독도 광고 모금 캠페인

세계 3대 해변으로 꼽혔다는 화이트비치가 있는 필리핀의 작은 섬, 보라카이. 이 곳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필리핀에 봉사활동을 왔었고, 마침 보라카이가 가까워서 1박 2일로 다녀왔던 것. 이번에는 교수님을 모시고 아시아안면성형학회 참석 차 다녀오게 되었다.


사실, 출발이 결정되기 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단, 4년차 선생님이 아직 해외학회 참가 경험이 없었던 것.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고, 아랫년차인 내 입장에서는 가시방석일 수 밖에 없었는데, 지난 겨울 새벽별 보기 운동(정말 거의 매일 새벽에 집에 들어갔다.)을 했던터라 그에 대한 위로 차원이라는 것에 모두들 이해해 주셔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회에 다녀올 수 있었다.


  • 첫 날 2012년 4월 29일


출발 전 날 국내 이비인후과 춘계학회 및 의국 선배님들과의 저녁 식사(뿐이었겠는가. 음주까지...) 후 뒤늦게 집에 들어와 부랴부랴 짐 싸고 자리 누운 시각이 12시 반, 교수님 댁 앞에서 5시 반에 만나기로 했으니 4시간 자고 일어나 씻고 나가야 했다. 못 일어나면 병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못 먹는 술까지 먹었는데도 4시간 후에 벌떡 일어나 씻고 나가 콜택시 불러 타고 교수님 댁으로 갔다. 잠시 기다렸다가 교수님과 합류, 교수님 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달렸다.


원래 계획은 여유있게 도착하여 8시 30분 비행기 이륙 전까지 7시에 개장하는 공항 라운지에서 쉬면서 아침식사도 하려고 하였으나, 항상 계획처럼 되지는 않는 법. 게다가, 인천공항이 워낙 커서 이동하는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려, 결국 아무 것도 못 하고 Final call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그리고 맞이한 제스트항공의 초라한 기내식. :) 하지만, 배가 고파서인지 이것도 개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참, 출국심사 전 무제한 데이터 로밍을 신청했다. 얼마 전부터 바뀌어 24시간 단위로 1만원씩이라 이번처럼 2박 4일인 경우 24시간 x 3일 요금만 되니 다행이었다. 더 저렴하게 이용하려면, 현지 USIM을 구입하여 사용하면 되지만, 이러면 같이 간 교수님께서 연락에 불편해 하실까봐 그냥 자동 로밍을 이용하기로 했다.(나중 이야기이지만 몇 통 주고받지 않았는데, 그 요금은 가히 살인적!)


지난 봉사활동일기를 찾아보니 칼리보 공항이 당시 공사중이었다. 이제 가 보니 번듯한 건물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봐야 그 크기는 시골의 시회버스터미널 수준. 아무튼, 비행기에서 내리니 12년만에 만나는 필리핀의 강렬한 햇살을 느낄 수 있었다. 햇살이 너무 강하여, 입국수속 후 화장실로 달려가 콘택트렌즈 착용하고 선글라스!! 그리고는 다른 병원 교수님들과 합류하여 차량에 나누어 탑승 후 카티클란으로 이동하였다. 12년 만에 달리는 길인데, 대충 기억이 났다. 카티클란에 거의 다 가서는 고불고불 산길을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탁트인 바다를 만나게 되는데, 12년 전 20여명의 스무살 청년들이 바다에 관련된 동요를 부르며 신나게 달렸던 그 기억도 떠올랐다. 아무튼, 곧 카티클란 선착장에 도착했고, 역시 12년 전에는 그냥 배만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멋진 선착장 건물이 있었다.


카티클란 선착장 간판 인증샷카티클란에서 배 타기 전. 저기가 바로 보라카이!보라카이에 도착!!!!


약 10명의 한국인 학회 참석자들이 있었고, 숙소 두 곳으로 나누어 배정되어 헤어졌다. 오랜만에 타 보는 라보(같은 경상용차 짐칸 개조 좌석)와 오랜만에 보는 트라이시클이 나 혼자 베시시 웃게 만들었다. 교수님 모시고 간 숙소는 보라카이 가든 리조트로, Station 2에 가깝고 화이트비치 가운데 즈음이며, 수영장도 있고, 화이트비치에 바로 나갈 수 있는 출입구도 있는, 나름대로 괜찮은 곳이었으나, 방이나 시설은 뭐, 보라카이가 워낙 작은 섬이라 큰 기대를 하면 안 되겠다.



모시고 간 교수님, 항상 한식만 드시는 교수님. (ㅠㅠ) 어렵사리 외국에 나와서 국내보다 맛 없으면서 더 비싼 한식을 먹어야 하는 통탄할 상황이지만, 이걸 얼굴에 표시할 수 있나. 그냥 맛있게 먹었다. :)


부의 상징이라는 해외에서의 소주까지!!


다른 숙소에 묵으신 교수님들(중 이번 학회의 대장님도 계신다.)과 합석을 하기로 하여 그 쪽 숙소에 가보았다. 크라운 리젠시로, 보라카이에만 세 곳이 있고, 이 곳은 크라운 리젠시 리조트 앤드 컨벤션 센터로 불린다. 아직도 공사중인 새 건물이라는 점은 좋은데, 계속 공사중이며 수영장도 아직 완비되지 않았고, 화이트비치까지 가려면 상당히 걸어가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학회도 이 곳에서 열리는데, 학회장에 쉽게 간다는 것을 빼면 우리 숙소가 더 마음에 들었다. :)


아무튼, 밤 늦게까지 하는 곳이 별로 없어 겨우 찾아 간 곳이 어느 멕시칸 바, Dos Mestizos에 갔으나, 나는 라이브 음악이 정말 좋았지만, 어르신들은 시끄럽다며.... 게다가, 가자마자 last order 라며 주문을 독촉하고는 더 이상 주문도 못 하는 상황에다, 내가 시킨 칵테일은 나오지도 않았고... 결국 첫 날은 일찍 일어나 해산했다.


화이트비치를 통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멋진 라이브 음악이 들려오길래 가 봤더니, 현지인 경비원에게 들었던 적이 있는 찰스 바 였다. 혼자 왔더라면 못 먹는 맥주라도 한 병 시켜놓고 보고 가고 싶었지만, 교수님께서는 한사코 빨리 들어가 자자고... -_-;; 결국, 잠시만 즐기고 숙소에 들어와 12년 만에 다시 와 본 보라카이 첫 날을 마무리 했다.


정말 멋진 음악이었는데, 즐기지 못 했던 찰스 바



  • 둘째날 2012년 4월 30일


보라카이의 아침간단한 아침식사 중아직 이른 시각이라 수영장에는 사람이 없다.


둘째날의 해가 밝아 올랐다. 역시나 아침부터 타는 듯한 햇살이 작렬하고 있었다. 평소 선크림 바르기를 무척 싫어하는 나도 저절로 선크림을 챙기게 하는 날씨. 그리고, 가급적 그늘로 숨어 다녀서 많이 타지 않았다. 아무튼, 교수님 모시고 리조트 수영장 옆의 식당인 가든 카페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아주 고급스러운 리조트는 아니라 그냥 기본적인 정도. 직접 만들어주는 오믈렛이 맛있어서 두 번이나 먹었다. 두번째에는 피자 치즈를 듬뿍 넣어서. :)



정말 그리웠던 필리핀 거리, 그 혼돈과 트라이시클, 그리고 필리피노들.학회장. 아직 시작 전.크라운 리젠시 리조트 앤드 컨벤션 센터의 로비


아침 먹고 학회장에 갔다. 어제도 행사 일정이 있었으나, 본격적인 시작은 오늘부터! 워낙 더운 동네라 양복 No! 자켓 No! 반바지와 슬리퍼도 OK 라는 이메일이 출발 사흘 전엔가 왔었지만, 정말 외국 참석자들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들어왔다. 민소매티에 크록스도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발표자들은 단정한 셔츠와 반바지 정도. 긴바지에 셔츠는 우리나라 참석자들 뿐이었다. 아무튼, 안면성형, 특히 비성형에 대한 좋은 강의가 많았으나, 해외학회다보니 모두 영어로 진행되었고....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_-;; 학회장의 에어컨은 빵빵해서 더운 이 곳에서는 밖에 나가지 않고 학회 참석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잠시 머리 식힐 겸 로비에도 다녀오기도 하였으나, 학회장만 나가면 엄청 더웠다. 객실 말고는 리조트가 모두 열린 공간이라 따로 냉방을 안 하기 때문. 많이 차려져 있지 않은 업체 부스도 볼 것이 별로 없고, 더워서... :)



그래서!!! 더 더운 화이트비치에 다녀왔다. :) 12년 전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화이트비치는 아직도 아름다웠다. 얼마전까지 녹조가 심했었다던데, 그나마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녹조는 있었다. 물놀이 준비를 안 하고 나오기도 했지만, 햇살이 너무 강해 도저히 바닷물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구경만 했다.



한국 참석자들끼리 모여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학회장인 크라운 리젠시 리조트 앤드 컨벤션 센터(헥헥.. 길다)의 1층에 있는 중식당, Wang Shan Lo. 부페식인데, 솔직이 맛이 너무 없었다. -_-;; 내가 중국 가서 먹은 음식들은 이러지 않았는데. 왠만해서는 먹는 것 투정하지 않는 내가 이럴 정도니 뭐. 볶음밥과 파인애플만 먹었다. 이후 오후 일정은 교수님께서 쉬자고 하셔서, 교수님께서는 숙소 들어가시고, 난 혼자 방황했다. :)





잠깐 학회장에서의 일탈을 하고서 다시 학회장으로 복귀, 남은 강의를 듣고난 뒤 차에 올랐다. 좌장 중 한 분이신 필리피노 의사 선생님의 별장에 간다고... Station 1 쪽을 지나 샹그릴라 리조트 쪽으로 가다가 샛길로 빠져서 올라갔더니, OMG!!!



이렇게 멋진 해넘이와 포도주/맥주 파티를 마친 뒤 삼삼오오 트라이시클에 나누어타고 다시 학회장으로 돌아왔고, 오늘 밤은 마지막 밤이라고 성대한 파티가 있다고 해서 따라가 봤더니, 크라운 리젠시 비치프론트인지 워터프론트인지, 아무튼, Station 3 가까이 있는 쪽 크라운 리젠시 앞 해변에 담을 쳐서 막고 간단한 무대와 부페가 차려져 있었다. 앞에서 행사 진행 요원들이 인원 확인 후 예쁜 언니들 인사 받으며 입장!! 음식이 아주 맛있지는 않아도 엄청 대접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필리핀 민속 공연은 덤.



간단히 떠온 접시.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깔끔했다.이렇게 해변을 막아놓고 부페를 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구경하더라고. '뭔 일 났나?' 하면서... :)


식사 후 헤어지기 아쉬웠던 무리들이 찾아간 곳은 크라운 리젠시 리조트 앤드 컨벤션 센터에서 보라카이 가든 리조트 사이에 있는 CORK 라는 와인바. 보라카이의 일반적인 술집과 달리 소규모에다가 고급스러운 분위기, 그만큼 비쌌던 술값과 안주값. :) 다른 학교 교수님들의 이야기, 특히 대장 교수님의 좌충우돌 해외 학회 참석 이야기에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었다.



  • 셋째날 2012년 5월 1일

한국에서는 노동절이라 쉬는 날인데, 이렇게 여기서 시간을 보내니 이상하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쉬는 것이 어디더냐!! :) 교수님은 다른 교수님들과 새벽에 일찍 보라카이 유일의 골프장에 골프 치러 가셨고, 나는 혼자 아침 식사를 해야 할 운명이었으나, 어제 와인바에서 대장 교수님께서 '너 그러면 우리랑 같이 다니자.' 하셔서 아침 일찍 크라운 리젠시 리조트 앤드 컨벤션 센터 로비로 가서 합류하였다. 오늘 아침 일정은, 조식 부페가 매우 훌륭하다고 소문난 보라카이의 샹그릴라 리조트에 가기로 했다. 밴을 타고 이동!


스콜이 내린 후의 보라카이 거리. 아직 이른 시각이라 차도 사람도 별로 없다. 아~ 12년 전 추억이 스물스물. :)



역시 샹그릴라!! 내가 꿈꾸던 리조트는 바로 이런 수준이었던 것이다. 2007년 세부 샹그릴라 리조트 앤드 스파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예약해 두었던 스파 빌리지 숙박이 어렵게 되어 팔자에도 없는 파노라마 스위트룸에서 지냈었는데, 바로 그 느낌이 왔다. 아~ 여기가 샹그릴라구나.


역시 고급스러운 샹그릴라!!!언덕에 위치한 샹그릴라 리조트


조식 부페는 듣던대로 훌륭했다. 뭐, 리조트 자체가 엄청 고급이니, 식당도 아주 고급스럽고, 직원들도 매우 친절하고, 준비된 음식들도 하나같이 정갈했다. 한국사람들도 많이 오는지, 김치 등의 우리 음식도 몇 가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열 접시도 먹고 싶었지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일정량 이상은 무리였다. :) 음식도 음식이었지만, 타 병원 교수님들께서 스스럼없이 끼워주시고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정말 좋았다. 다른 학교/병원 이야기도 듣고, 어느 교수님의 사모님이신 개원가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아침 식사를 하고, 돌아갈 차편과의 시간이 약간 남아 리조트 내부를 둘러보기로 했다. 뭐니뭐니 해도 수영장과 해변!! 역시 신혼여행 때 생각이 떠올랐다. 삘 받은 대장 교수님께서는 급기야 빈 방을 알아보기 시작하시고... :)



아쉽지만 원래 숙소로 돌아와 골프 치러 가신 교수님 오시기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왔다는 흑인여자랑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요리사였고, 친구들이랑 왔는데, 자기는 돌아다니기 귀찮아서 그냥 쉬고 있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이해하느라 머리에 쥐 나는 줄 알았다. :) 한 30분 이야기 했나, 쿨 하게 안녕~! 하고 일어나길래, 나도 안녕~! 하곤 읽던 책을 좀더 읽고, 수영도 좀 하고 그랬다.



점심 시간에 늦겠다는 교수님의 연락을 받고, 혼자 디몰 쪽에 가서 어슬렁거리며 혹시나 기념품으로 사갈만한 것이 있나 둘러봤는데, 모두 조잡한 것들 뿐이고, 괜찮아 보이는 것은 너무 비싸고 해서 그냥 안 사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점심으로 뭘 사먹을지 고민하다가, 좋은 곳은 가격에 울고, 나름대로 저렴해 보이는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먹었는데, 이게 환율 계산해 보면 그다지 싼 가격도 아닌 듯 했다. 



오후에는 교수님 들어오셔서 쉬시고, 나는 체크아웃을 했다. 돌아갈 비행기가 내일 새벽 0시 30분이었기 때문. 대장 교수님께서 결국 샹그릴라로 옮기신다는 소식에 다시 구경하러 따라 나섰고, 현지 가이드 만나 돌아갈 시각이 빠듯하여 돛단배는 못 타고 돌아와 교수님과 조우하고 신라면(해외에서 라면이라니... ㅠㅠ) 사먹고 카티클란을 거쳐 칼리보 공항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열린 공항 입구. 들어와서 탑승권 기다리는 중.출국수속 해도 또 기다린다. 참, 공항세 500페소 잊지 말자.드디어 돌아가는 비행기 탑승.



공항 앞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조금 넘었고, 공항 개방은 11시 반 경이라니, 한 시간 넘도록 뭐 하나 고민하다가, 공항 앞의 한 가게에 들어가 음료수 사 마시며 의자와 탁자에 앉아 쉬었다.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은 길게 줄 서 있던데, 결국 다 같은 비행기 탈거고, 줄 서서 일찍 들어가 봐야 거기서 또 탑승권 받으러 기다려야 하고, 다시 출국 수속에, 비행기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구태여 줄 서 있을 필요가 없었다.


공항이 크지 않으니 다른 비행기도 없고, 제 시간에 문 닫고 출발! 일정 고도에 오르자마자 기내식을 주는데, 정말 별 볼일 없었지만 살짝 출출해서 다 먹고, 화장실 가서 양치하고, 잠시 눈 붙였더니 인천공항! 내리자마자 휴대폰 켰는데, 병원에서 응급수술 있다고 빨리 들어오라고 전화 오고... -_-;; 결국 쉬지도 못 하고 집에 들러 짐 내려놓고 샤워만 하고는 바로 출근하여 일 시작했다. 천국에서 있다가 지옥으로 떨어졌다고나 할까?


아무튼, 난생 처음 해외학회 참석을 해 보았고, 더우기 12년 전에 가보았던 곳을 다시 가보게 되어 감회가 새로왔다. 보라카이 자체는 참 좋은데, 모여가며가 힘들어 가족들이 함께 오기는 좀 어려울 듯. 어디든 샹그릴라는 정말 마음에 든다! :)


이로서, 첫번째 해외학회 참석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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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배 작가의 손길이 담긴 사진




오늘 아침에 운동을 마친 후 그 동안 정리를 못 하고 있던 필리핀 봉사활동 때 찍은 사진을 모두 들고 창배네 집에 가서 몽땅 스캔을 했다. 음.. 몽땅 하고 싶었는데, 양이 많아서 추려서 했다. 그리고서 스캔한 사진들을 적당한 자리에 넣어주고 대강의 일기 편집을 마무리 했다. 2000년에 갔던 것이니 5년만에 마무리를 지은 것이다. 이전에 스캔해 둔 것은 일부러 오늘 스캔하지 않았는데, 그게 또 쓰려고보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선 볼만하게는 마무리를 해 두었으니, 이전에 스캔했던 사진들을 다시 발견하게 되면 짬짬히 추가해 두어야겠다.

당시 아미티라는 미니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일기를 썼는데, 일기를 매일 쓰지 못했던건지, 매일 썼는데 중간에 유실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의 닷새가 비어있는 것은 아주 아쉽다.

필리핀 봉사활동 일기를 보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



봉사활동 일기 중의 사진을 보면
여성동지들에 둘러싸인 사진이 많은데,
총 20명의 팀원 중 여자 15명, 남자 5명..
이런 성비였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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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18일 화요일


6시에 일어났다. 호텔 수영장이 있고 투숙객에게는 무료라길래 한번 가보려고 했으나, 일어나보니 너무 추워서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호텔이 쌀쌀하다. 아마도 더운 날씨 때문에 실내 냉방이 빵빵한가보다.

씻고 가방 싸고 천천히 내려가 7시부터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역시 우리에겐 American Breakfast가 좋다. 지난 번에 먹어보았던 Bay View Pakr Hotel의 아침 부페보다 훨씬 좋았다. 많이 비싼 호텔에 온건가... ^^;; 밥은 조금 먹고 맛있는 빵과 과일 주스, 생과일을 많이 먹었다. 거의 한 시간 가량을 먹었나보다. 8시가 되어서야 방에 올라가 양치질 하고 다시 가방 정리 후 내려가 사람들을 기다렸다.

출국 전에도 간단한 관광을 하기로 했다. 첫번째 코스는 호세 리잘 공원. 우리나라에 이순신이 있다면, 필리핀에는 호세 리잘이 있다고나 할까? 아니다, 우리나라엔 조국독립을 위해 몸 바쳐 싸운 영웅!! 했을 때 바로 이름이 튀어나오는 사람이 하나로 정해져있지 않은 반면, 필리핀에서는 일고의 여지없이 호세 리잘이 국민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필리핀 최고의 국민영웅~!

삐뚜름하지만 호세 리잘 공원에서 찍은 우리팀 단체사진



공원에 갔더니 여기저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세 개의 공원으로 이루어진 호세 리잘 공원은 1년 365일 각종 모임과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세 개의 공원 중 중앙공원에 갔다. 날이 너무너무 더웠다. (ㅠ.ㅠ) 조금 돌아다니다가 사진도 찍고... 후딱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로 돌아왔따.

호세 리잘 공원에서 폼 잡고 찰칵!



호세 리잘의 묘소. 필리핀 해병대가 365일 24시간 보초를 선다.



다음으로 Robinson 백화점에서 한 30분 쇼핑을 했다. 별로 살 것도 없고, 그냥저냥 백화점은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하고... 바로 공항외 면세점으로 가서 쇼핑. 아무래도 여행사의 수수료 챙기기 때문에 온 듯 한데, 국내에서는 아주 비싼 가오리지갑을 판다길래 관심있게 보다가 결국 어머니, 아버지꺼 하나씩 샀다. 아버지꺼는 킹가오리 가죽으로 만든거라고 해서 일반 지갑보다 훨씬 비싼 미화 100달러짜리. ;;; 어머니껀 70달러짜리로 샀다.

쇼핑을 마치고 바로 공항으로 가는데, 이런이런... 교통지옥 마닐라, 길이 너무 막혔다. 비행기 출발 시각은 점점 다가오는데, 아직 공항은 멀었고... 겨우 1시에 공항에 도착해서, 잘 생긴 가이드 아저씨와 빠이빠이~ 짐 넣고, 보딩패스 받고, 출국수속하고, 비행기 안으로 골인~!!

3시 10분,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활주로에서 20분 정도 기다리던 비행기는 3시 27분에 필리핀 마닐라를 떠나 서울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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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17일 월요일


Kalibo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5시 10분에 일어나 해 뜨는 것을 지켜봤다. 동그랗고 새빨간 태양이 다시 떠올랐다.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이곳과도 작별이다. 무엇인가 많은 것을 한 듯 하지만, 많은 것을 하지 못한 아쉬움 등등이 밀려온다.

정신차리고 집 청소를 시작했다. 모기장, 침대, 이불, 베게, 다 치우고 샤워하고 짐을 마져 챙기고 차를 기다렸다.

9시 즈음 차가 와서 짐 싣고 공항으로 향했다. Kalibo 공항은 공사 아직 중이었다. 짐을 체크하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이런이런.. NVC 학생들이 우리를 마중하러 나왔다. 고마워라~ 인사하고, 사진찍고... 10시 20분이 되어 체크인을 했다. 공항이 워낙 작아(우리 시골 동네 시외버스터미널 수준이랄까?) 금방 들어가 기다렸다. 그 동안 활주로에서 기다리던 두 비행기 중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이륙을 했다. 10시 40분에 활주로를 조금 걸어서 비행기에 들어갔다. 11시가 조금 넘어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 활주로 저 끝으로 갔다가 엔진의 출력을 높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덜컹거리는 비행기는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Pook Airport를 올라갈 때 우리가 묵었던 집을 찾아보려 했으나 비행기가 너무나 빨리 지나가서 찾을 수가 없었다.

공항에까지 마중나와준 NVC 학생들과 함께..



12시가 조금 못되어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여행사 가이드를 만났다.(귀국까지 하루 여유가 있어 간단한 마닐라 투어를 여행사 통해 하기로 했다.) '비원'이라는 한식당에 가서 불고기, 전, 김치찌개를 먹었다. 그 동안 계속 밥을 해 먹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식사를 이렇게 먹어본적이 오랜만이라 다들 배부르게 밥을 먹었다. 나도 무려 한 공기 반이나 먹었다.

조성모의 뮤직비디오에 배경으로 나왔다는 '팍상한'으로 출발했다. 두 강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 웅장함.. 이라는 뜻을 가진 팍상한. 세계에서 알아주는 교통지옥 중 하나인 마닐라답게, 마닐라 시내를 빠져나가는 것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이렇게 두 시간을 달려 팍상한에 도착했다.

보트를 타기 전에 모두 구명조기를 입고..



팍상한 폭포가 유명한데 거기까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통나무배를 탔다. 2인 1조가 되어 통나무배에 오르면 바짝 마른 필리핀 아저씨들이 배 앞/뒤에 한 명씩 노를 저어 올라가는거다. 물살이 세지 않은 곳까지는 모터보트가 끌어주는데, 강폭이 좁아지고 수심이 얕아지니 모터보트는 하류로 내려가버리고, 배 앞/뒤에 앉은 아저씨들이 노를 저어 올라가는데, 이게 거의 배 밖에서 강물 속의 바위를 밟아 앞으로 미는 수준이었다. 재미있긴 한데, 관광객이란 이유로 가만히 앉아서 육체노동을 보고 있자니 상당히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폭포가 많이 보였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도 보인다.



이런 배를 타고 올라가는거였다.



올라가면서 많이 봤던 크고 작은 폭포들..



그렇게 10여분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에 크고 작은 여울들이 무지 많고, 폭포도 많이 보이고, 널려있는 기암괴석과 나무들을 보느라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어려웠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놀러오는지, 아저씨들이 한국어를 단어 수준이지만 구사해서 놀랐다. 카메라를 건내주면 '김치~' 하면서 찍어주고.. 다 올라가니 커다란 폭포가 나왔다. 땟목을 타고 폭포가 떨어지는 곳 아래로 들어가는데, 여기 아저씨들도 '앉아요!' 하고 주의를 줬다. 떨어지는 물을 맞으니 너무 시원하고 상쾌하다 못해 추웠다. ^^;; 아저씨들은 우리도 잊고있던 '따봉?'을 외치며 다시 한번 더~!

폭포 들어갔다 나와서 모두 물에 빠진 생쥐꼴. ^^ 근데 왜 나 혼자 구명조끼 안 입고 있지??



폭포 맞고 다시 배타고 내려오는 길은 금방이었다. 옷 갈아입고 마닐라로 출발했는데, 잠시 자고 일어났지만 차가 너무 많이 막혀서 별로 움직이지를 못 했다. 언제 마닐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6시에 팍상한에서 출발했는데, 8시 반이 되어서야 마닐라에 도착했다. Korean Palace라는 음식점에서 부대찌개와 해물전골을 맛있게 먹고 Manila Midtown Hotel로 투숙했다. Kalibo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Bay View Park Hotel보다 좋았다. 마사지 받으러 간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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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16일 일요일


7시 30분 경에 일어났따. 오늘은 아클란 주 의원이신 Allen Quimpo씨 댁에 초대받아 점심약속이 있다. 그래서 11시에 집(Canno)에서 모이기로 하고 알아서 자유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대강 챙기고 용래형, 총명이, 명섭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먼저 재래시장에 갔다가 대강 둘러보고 헤어졌다. Royal Mart에 갔더니 수진이와 소영이, 성옥이와 현주가 있어서 같이 케익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Royal Mart를 나와 LEVI'S 매장엘 갔다. 우리나라 매장에 비해 저렴하다는데, 원래 이런 비싼 옷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다. 나와서 민속 공예점에가서 또다시 구경만!! 하고 나왔다. 그들과 헤어지고 Bread & Butter에 가서 빵과 주스를 사 마셨는데, 으으아~~ 역시 Bread & Butter의 빵맛은 예술이었다!!

시장에서 고기와 소세지를 파는 가게



이렇게 좌판을 벌린 아이도..



재래시장의 수공예품 가게



Royal Mart 내부. 이 동네 유일의 현대화된 슈퍼마켓



독실한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 곳곳에는 이렇게 기도하는 장소가 있다.



집에 일찍 돌아와 밀린 빨래를 하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하나둘 모여서 Allen Quimpo씨 댁으로 출발했다. 도착했더니 환대를 해 주셨다. 나머지 사람들이 올 때까지 거실에서 이야기를 하며 잠시 기다렸다.

모두 와서 12시 반 경부터 식사 시작! 지역 유지의 집이다보니 상당히 크고 정원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모인 자리인 듯 했는데, 예쁜 정원에 차려져있는 식사가 너무 멋져보였다. 우리가 준비해 온 김치도 나와있었다. 난생처음으로 오징어 먹물소스도 봐서, 오징어 데친 것을 찍어먹어보기도 했다. 빵도 많이 먹고, 파인애플도 많이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오랜만에 배불리 먹었다. 예쁜 정원에서 서로 사진 찍고 이야기하며 놀다가 2시 경에 나왔다.

몇몇 사람들은 투계장으로 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밀린 빨래가 왜이리도 많은지, 다시 빨래 해서 널어놓고 쉬고 있는데, 동남아 특유의 스콜이 갑자기 쏟아져서 허겁지겁 빨래를 안으로 옮겼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5시가 되었다. Author와 Malone, Benjie가 와 있었다. Benjie가 팔찌를 선물로 주었다. 고마워, Benjie~ ^^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멋진 노을이었다. 솟아있는 산 하나 없는 평원에 해가 지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왜 이제서야 봤을까. ^^

아클란 팀장이었던 혁준이형과 함께..



집 바로 옆의 해변(이 있는 줄도 몰랐다.)에 있는 Seafood Restaurant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를 주문하고서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해서 식당 바로 앞에 있는 해변에 나가 거닐었다. 해는 지고, 보름달이 떠오르고, 구름이 멋지게 깔려있는데.. 으아~ 이 또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 위에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파도 위를 비추는 영롱한 달빛. 캬하~~

식사가 다 준비되었다고 해서 들어가 식사를 시작했다. 닭고기, 굴, 오징어, 생선 등등 없는게 없었다. 초고추장 생각이 간절했는데, 준비해 오지 않았으니 있을리가 없지. 그냥 간장에 찍어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해변을 더 거닐다가 시내에 있는 한국인이 경영한다는 술집에 갔다.

술집 안에 Videoke가 있어서 테이블마다 노래 신청할 수 있는 수량이 정해져 있어, 신청을 하면 거기서 부르는 것이었는데, 오래간만에 한국 노래도 부르고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못 마시는 술도 분위기에 취해 맥주 반 병 정도 마셨나... Kalibo에서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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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15일 토요일

오늘은 NABAS의 Cold Spring에 가는 날이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대강 먹고 교수님께서 계시는 ATONG ATONG에 갔다. 차를 기다렸다가 자동차 두 대에 팀원들이 나누어 타고 NABAS로 떠났다.

Cold Spring으로 가기 전, Canno의 Salas Fish Pond 집 앞에서..



CATICLAN에 가는 길과 비슷했는데, 아무튼 한 시간 가량 달려서 Cold Spring에 도착했다. 산에서 찬물이 솟아나와 산 아래로 흐르고 있는 동네였는데, 자그마한 야외 풀장처럼 꾸며놓은 리조트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한 곳에 들어가 차에서 내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푼 후 물에 퐁당~ 들어갔다. 날이 좋았다면 괜찮았을텐데,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라 물 밖에서도 덥지 않은 날이어서 그랬는지, 물 속에 있으니까 매우 추웠다. 날이 좀 따뜻했으면 좋으련만... 매번 더워서 고생했는데, 이렇게 찬물에서 놀다보니 영 다른 기대를 하게 되었다. ^^ 팀원들끼리 물장난 치면서 같이 놀다보니 추운 것도 잊고 시간도 금방 지나갔따.

같이 왔던 Author와 Malone이 약속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이 일찍 나왔따. 1시 20분 즈음.. 나오다가 Author와 Malone은 약속 때문에 빠이빠이하고 남은 사람들은 모두 투계장으로 갔다. 필리핀에서는 투계가 상당히 인기있는 스포츠라던데, 우리가 갔던 투계장은 Kalibo 근교에 있는 것인데, 마치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 보던 검투장을 축소해 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투계장 내부의 모습



투계장 주위에는 각종 먹거리들을 파는 노점상들도 있고, 심지어 투계 후 죽은 닭을 파는 것인지, 아무튼 닭고기를 파는 노점상도 있었다. 투계장 안에 들어가보니 경기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관람하는 곳이 비잉 둘러져있었다. 경마처럼 돈을 걸고 하는 카운터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곳이 따로 없고 입장료 내고 들어가 각 투계 시작 전 개인적으로 배팅을 하는 것이었다. 만약, A 닭과 B 닭이 싸우게 되고, 베팅 시간이 주어지면 누가 'A 닭 200페소!'라고 외친다. 이 때 'B 닭 200페소!'라고 외치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눈이 마주치면 거래가 성사된 것이고, 경기 후 약속한 돈이 오고 갔다. 500페소를 한번에 거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래도 신기한건 누구 하나 도망가지 않고 승부에 따라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투계장에서 돌아와 저녁을 같이 먹고, 간단한 회의를 한 후에 단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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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14일 금요일


오늘은 Korean Festival Day. 그 동안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우리가 알려주고 그들이 배운 것을 하루 종일 뽐내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바로 NVC Capitol에 갔다. 10시에 태권도를 배운 학생들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Festival에 필요한 짐을 대강 챙기고 길임 누나와 갔다.

잠시 기다리니 학생들이 하나 둘 도착해서 연습을 시작했다. 순서는.. 기본동작->격파->태극1장. 아무래도 태극1장이 가장 문제였다.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은 순서를 잘 외우는데, 초등학생들은 계속 까먹었다. 해결책이야 반복연습 뿐이라 이미 허리가 아파오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연습을 했다.

NVC Capitol에 걸려있어 우리를 환영해주는 현수막



12시에 팀 멤버 모두 NVC에 모이기로 했는데, 오는 사람들이 없었다. 잠깐 농구도 하고.. 점심식사를 가져온다길래 밥도 안 먹고 기다리고, 밥 먹으러 간다는 필리핀 학생들도 같이 밥 먹자고 잡고 있었는데.. Festival이 1시 30분 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팀원들이 다 온 시각은 1시 40분이었다.

음식을 먼저 내놓고 길놀이를 시작했다. 계획은 30분 정도. 그것도 너무 긴듯 하여 20분만 하려고 했는데, 길놀이가 학교 밖으로 나가자 맨 앞에서 호위해 주는 경찰차가 동네를 너무도 크게 돌아서 거의 40분 정도를 땡볕에 쉬지도 않고 길놀이를 했다. 같이 길놀이를 한 팀원들의 얼굴도 내 얼굴과 마찬가지로 땀범벅이었다. 징을 들고 있는 왼팔의 힘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고, 40분 동안 어떻게 길놀이를 버텼는지, 아무튼 정신이 없었다. 길놀이를 하며 다시 NVC Capitol로 돌아와 다음 행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데, 왼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옷을 갈아입고 무대 뒤에서 기다렸다.

NVC Alumni Hall에 걸려있는 '문화교류 프로그램' 현수막



Festival 프로그램 진행은 NVC Alumni Hall에서 Author와 명섭이가 했다. 그 동안 준비했던 태권도도 보여주고, 우리 팀원의 Poison(엄정화 노래) 춤, 단소 공연과 필리핀 민속춤이 이어졌다.

Sharon과 함께 필리핀 민속춤을!!



펄쩍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



도도한 Sharon의 자태 뒤에 숨어있는 나.



화려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우리 팀은 감사장을 받았다. 아이들과 사진도 찍고, 선물도 주고 받고...


농구경기에 우리팀 남자들 총출동!!



마지막 일정인 농구경기를 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가운데 펼쳐진 농구경기에서 우리 팀은 NVC팀에게 무참히 패하고 말았다. 길놀이부터 시작하여, Festival 본 프로그램, 거기에 농구까지.. 너무 힘들어서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끝까지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마칠 수 있었다.

점프볼!!



남자들이 우리 팀에 딱 다섯 명 뿐이라, 농구 경기까지 해서 너무 땀을 많이 흘렸기에 교수님이 묵고 계신 ATONG ATONG으로 가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머지 팀원들은 뒷풀이를 위해 중국인 식당으로 갔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식당에서 합류하여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다시 ATONG ATONG으로 돌아와 Videoke에 갔다. 모두 외국곡 뿐이었지만, 좋은 노래를 골라 모두 같이 부르며 재미있게 놀았다. Videoke 아래층은 나이트였는데, 다들 갔지만 난 나이트에 흥미가 없어 안 가는 사람들과 교수님 방으로 가서 이야기 나누다 잠들어 버렸다.

일어나보니 침대 세 개에 각각 세 명씩 널부러져 자고 있었다. ^^;;;
11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자려고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고 내일 Cold Spring 간다고 해서 그냥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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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태권도 수업을 마치고 NVC 학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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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11일 화요일


8시에 일어났다. 태권도 수업의 강행군으로 인해 허리가 아직도 아팠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부족한 세면시설 때문에 다들 씻느라 때아닌 전쟁을 치루었다. 식사는 간단히 밥과 빵으로 해결했다. 매번 밥을 해 먹어야 하니, 항상 식당에서 차려주는 밥을 먹었던 작년의 봉사활동과는 전혀 다르다. 양치하고 바로 NVC Education으로 향했다.

9시가 되어 도착했다. PE Class(체육 수업)가 바로 옆에서 하고 있었다. 무술의 한 종류인것 같은데, 아마도 가라데였나보다.

열심히 태권도 수업 중!



오늘부터는 용보가 수업을 이끌었다. 그 동안 내가 혼자 수업 진행을 하느라 목이 많이 쉬어서 용보가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드디어 오늘 태극 1장에 들어갔다. 사실, 우리야 수업을 하루 종일 하고 있지만, 실제 배우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띄엄띄엄 오기도 하고 제한된 인원으로 인해 횟수도 그리 많지 않은터라 처음부터 잘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자세와 기술을 알려주어도 다음 시간에 와 보면 까먹기 일수였는데, 오늘은 그나마 많이 좋아져서 드디어!! 태극 1장을 시작한 것이다. 다들 어려워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많이 즐거워 했다.

수업을 마치고 Royal Mart에 갔다. 2층에 올라가보니 지역 인터넷 업체인 I-Next의 지사가 있어 승용이 형이 이 지역 인터넷 및 통신에 대한 조사를 위해 잠시 들렀다. 하지만, main office로 가보라는 대답을 해 줄 뿐이었다. 그래서, 우선은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통증 완화를 위해 다시 멘소레담으로 목부터 허리까지 몸 뒤를 모두 바르고 한 숨 잤다. 12시 20분 즈음 일어나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Korean Festival Day에 선보일 필리핀 민속춤을 배우기 위해 NVC Capitol로 갔다.

Author과 Sharon이 와서 필리핀 민속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열심히 배우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전통놀이팀이 수업하러 가야 할 시간이 되어 오늘의 민속춤 배우기는 마치고 각자 해산!

Sharon에게 열심히 필리핀 민속춤을 배우는 중..



나랑 용보, 그리고 명섭이가 태권도 수업을 위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3시까지 기다렸는데... 와야할 초등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정규수업시간과 겹친 모양인데, 미리 알려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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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7월 10일 월요일


오늘 일어났더니 허리와 목이 매우 아프다. 십 수 년간 하지 않았던 태권도를(유치원 다닐 때 해 보고 이렇게 본격적으로 한 것은 이번이 첨이다) 하는 것이 무리가 되었나보다. 용보는 무엇을 잘못 먹은 탓인지 배가 너무 아파서 오늘 수업은 쉬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9시에 있는 NVC Education Building 수업에 늦지 않게 출발했다. 오늘도 기본 동작 복습을 했다. 지난 주에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태극 2장 정도까지는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본 동작 마저도 다 익히지 못해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오늘도 기본 동작 복습을 했다.

지난 주에 내가 수업을 진행했더니 가뜩이나 원래 말을 적개 하고 사는데 말을 많이 하고 소리를 질러서 목소리가 많이 쉬어버렸다. 그래서 오늘부터 용보가 수업 진행을 하기로 했었는데, 배가 아파서 수업에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내가 안 나오는 목소리로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기본 동작 복습을 열심히 하고 수업을 마쳤다. 너무나 피곤해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져서 한 잠 청했다. 잠깐 자다가 일어나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리고 목과 등에 멘소래담 로션을 발랐다. 다리미를 올려놓은 것 처럼 엄청 나게 뜨거웠다. 그래도 남은 한 주 태권도 수업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멘소래담 바르고 좀 쉬다가 3시의 수업에 맞추어 NVC Capitol로 갔다. 수업 시간이 되었는데 초등학생 네 명만이 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다른 수업이 있어서 학생들이 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활동 시간에 수업을 일괄적으로 하지 않고 우리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참여할 수 있는 학생들이 모이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1대 1, Man to Man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을 하다보니 차라리 학생 수가 적은 것이 수업 진행 하기에 훨씬 수월했다. 하나하나 잘못된 점을 일일이 지적하고 고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명중 Chris와 Francis는 서툴지만 제법 잘 따라하는데, 나머지 두 명은 계속 알려줘도 계속 다른 동작을 했다.

초등학생들의 수업이 끝나고 4시부터 고등학생들의 수업 시간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학생들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학교 수업이랑 겹치는 모양이었다. 물어볼 곳도 없어서 그냥 운동장에 앉아 쉬면서 한 시간을 보냈다.

5시부터는 대학생 수업이었다. 약시나 처음에는 학생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약 10명 쯤... 수업을 시작하고 준비운동 하고 하니까 하나 둘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수줍음을 많이 타나보다. 대학생들도 기본 동작 복습을 했다. 수업을 하는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건물 3층에 있는 NVC Alumni Hall에 올라가서 했다. 열심히 연습을 하고 6시에 수업을 마쳤다.

열심히 설명 중. 아마도 발을 11자로 벌리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나보다.



학생들을 팀으로 나누어 직접 지도를 시작했다.



조금 쉬고 Raphael Memorial Hospital로 이동했다. 7시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간단히 복습을 하고 태극1장을 시작했다.


잠시 쉬다가 Raphael Memorial Hospital로 이동했다. 병원이 제일 늦게 수업을 시작했지만, 성인들인데다가 수업에 매우 열심히 참여하기 때문에 기본 동작을 어느 정도 소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반과 달리 '태극 1장'을 나가기로 했다. 기본 동작들을 순서에 맞게 재구성하기만 하면 태극 1장이 완성되는 것인데, 그 순서를 외우는 것이 어려운지 계속 틀렸다. 하긴 왼쪽, 오른쪽, 왼발, 오른발, 왼손, 오른손이 제각각 움직이니까 헷갈리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잘 생각해 보면 계속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왼쪽, 오른쪽 발과 손을 사용하는 것인데... ^^; 계속된 연습으로 수업을 진행하다가 8시가 되어서 오늘의 수업을 마쳤다.

병원 엠뷸런스를 타고 집에 왔다. 오늘은 NISSAN 픽업 트럭을 모는 드라이버 아저씨였다. 역시나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그 상태 안 좋은 길(필리핀의 도로 상태는 음... 좋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포장상태며 노견도 없고 인도도 없고..)에서 100km/h 까지 밟으며 집에 4분 만에 도착해 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이 용보 생일이고 경민이는 8일이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제 이 곳에 왔기 때문에 같이 생일 축하를 해 주기로 했다. 명섭이가 아침에 사온 카스테라와 휘핑 크림을 가지고 소영이, 성옥이 등이 같이 케잌을 직접 만들었다. 생일 케잌에 촛불을 올리고 노래도 부르고 고깔도 씌워주고 즐겁게 생일 파티를 했다.

파티가 끝나고 잠시 쉬다가 회의를 했고, 회의 후 밖에 나가 산책을 하다가 돌아와 잤다. 오늘도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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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9일 일요일

오늘은 NVC 총장님이신 Linda Fernandes Quimpo씨의 별장에 놀러가기로 했다. 별장은 Kalibo 근교의 해변에 있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점심에 먹을 불고기와 김치, 식기 등을 챙기고 차에 올랐다. 두 차에 나누어 별장으로 향했다. 까노에서 한참을 달려 산 넘고 물 건너서 겨우 도착했다.

별장은 으리으리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보통 집처럼 생긴 수수한(?) 별장이었다. 우선 짐을 대강 풀고 점심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가 준비해 온 양념에 재워놓은 불고기도 커다란 솥에 넣고 익혔다. 옆에서는 벤쥐(Benjie)가 명섭이 말로는 우리 나라에서 매우 귀하다는 조개를 숯불(여기서는 숯불도 야자 열매로 만든다. 야자 열매로 별걸 다 한다.^^)에 굽고 있었다. 이미 총장님댁에서 준비해 오신 음식들이 있었다. 아기 돼지 통바베큐도 있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아기돼지 바베큐



점심을 아주아주 맛있게 먹은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방이 두 개 있었는데 밖에서 보일까봐 화장실을 들어갔더니, 오.. 이론. 방을 양쪽에 두고 화장실이 가운데에 하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양쪽 방에 문이 하나씩 있는데 열고 들어가면 똑같은 화장실이 나오는 것이었다. 음.. 어쩔 수 없이 볼테면 봐라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늘도 비가 왔다갔다 한다. 그 동안 놀러 딱 두 번 움직였는데(보라카이섬과 이 곳 별장), 움직일때마다 비가 오락가락 한다. 오늘도 출발할 때에는 날씨가 좋았는데, 별장에 도착할 때쯤 되니까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필리핀 생활에 익숙해져 이 정도 비쯤이야 하면서 해변으로 나갔다.

지난 주말에 갔었던 보라카이는 새하얀 모래사장이 있었는데, 이 곳은 거의 검은 빛을 띠는 모래사장이 있었다. 물은 역시나 바닥이 다 보이게 맑았다. 한참을 우리들끼리 물놀이도 하고 수영도 했다. 잠시 후 총장님의 아들 중 한 명인 Michael과 그의 사촌 Raymond가 들어와서 같이 놀았다.

비가 왔다갔다 하는 날씨 속에서 물 놀이를 했더니 체온을 빼앗겨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더욱더 재미있게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별장 앞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좀 추워지는 듯 해서 해변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옷.. 그 동안 못 보던 사람이 해변이 서 있는 것이었다. 바로 경민이였다. 시험을 보고 오느라 오늘에서야 혼자 오게 된 것이었다. 불쌍한 것... 혼자서 그 먼 길을 오다니. ^^; 오자마자 짐만 까노에 내려놓고 바로 별장으로 온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우리가 아니지. 경민이를 기어이 끌고들어가 바닷물에 던져 넣고 말았다.

뒤늦게 합류한 경민이와 함께~



한참을 놀다보니 해가 어느 덧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려고 했더니 방 사이에 껴 있는 그 놀라운 화장실에는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별장 뒷쪽에 있는 샤워실(^^)에서 샤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여학생들이 하고 나왔다(아주 좁은 공간이어서 두 명 정도씩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내가 들어가보니, 오잉... 수도가 아니라 수동 펌프가 있어서 그걸로 물을 한 양동이 퍼 내고 사용하고, 다시 물 퍼서 사용하는 식이었다. 혼자서 열심히 물을 퍼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해가 이제 지평선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 동안 못 찍었던 사진을 찍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별장을 중심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총장님과도 같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의 시간을 갖고 바로 저녁 식사를 했다. 벌써 해가 넘어가서 주위는 칠흙처럼 어두워지고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서(필리핀에서는 정전이 매우 자주 된다), 촛불을 켜고 식사를 했다. 그랬더니 또 다른 멋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뒷 정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즐거운 일요일이었다. 날씨가 조금 더 좋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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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8일 토요일

오늘은 토요일이다.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스케줄이 없지만, 예전에 의논한 것처럼 우리가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탁아소 중 한 곳에 페인트칠을 해 주기로 했다.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샤워를 하고 바로 나갔다. 지푸니(우리 나라의 다마스같은 작은 화물차의 화물칸을 개조하여 사람이 탈 수 있는 모양을 한 지푸니도있다. 지푸니를 이용하다보니 몇 번 같은 차를 타게 되었는데, 그 기사 아저씨가 우리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거의 우리 전용 지푸니가 되어버렸다. 물론 차가 작아서 전원이 타지는 못하지만, 몇 명이 움직일 때에는 아주 좋다.)를 타고 그 탁아소로 갔다. 미리 혁준이형이 페인트와 사포 등을 사 두어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탁아소는 매우 작았다. 건물 평수만 약 15평 되려나?(더 작을지도..) 거기에 그네만 하나 달랑 있는 놀이터가 전부였다. 건물에 전부 다 칠하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다시 금방 더러워질 것 같아서, 창문에 붙어있는 방범창을 칠하기로했다. 방범창은 창문 앞에 붙어있는데, 오래되어서 녹도 많이 슬어있었고 칠도 많이 벗겨져 있었다. 명섭이와 한 조가 되어서 방범창 하나를 맡고 사포로 녹을 벗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바람이 조금씩 불어서 좋긴 했지만, 벗겨낸 녹 가루들이 날라다니고, 몸과 얼굴과 팔에 마구마구 떨어졌다. 숨쉬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가기 전에는 쉽게 녹을 벋겨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날은 시간이 갈 수록 더워지고 땀은 비오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 두 시간 쯤 지나서 사포질을 멈추고 잠시 쉬었다.

그 때는 바로 점심시간. 원래는 오늘 저녁에 이 지방에서 건설업을 하는 중국인집으로 초대 받아 가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초대가 취소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오늘 페인트 칠을 해 주고 있는 그 탁아소를 바로 그 중국인이 지어준 것이었고, 바로 그 앞에 그 중국인의 집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중국인이 점심을 직접 대접하지는 못하지만, 먹을 것을 보내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점심시간이 되어서 보니 졸리비(Jolly Bee)에서 사온 닭고기 세트(닭고기 1개, 밥 하나, 소스, 콜라)가 있었다. 아이스크림도 있었는데 그냥 두면 녹을까봐 다시 그 중국인집으로 가져가면서 식사를 하고 잠시 방문해 달라고 했다. 졸리비 닭고기 세트를 잘 먹고 그 중국인 집에 방문했다. 이곳도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화교들이 경제권을 꽉 잡고 있다고 했다. 그 분의 환대를 받으며 집으로 들어가서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준비되어있던 아이스크림(아이스크림마져 망고맛이 있었다. 바닐라도 있었고...)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필리핀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텔레비젼을 처음으로 봤다. 알고봤더니 필리핀에는 텔레비전을 아무나 가지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제대로된 방송국이 없어서(라디오 방송국은 매우 많다) 텔레비전은 모두 위성 TV였다. 그래서 우리 나라 방송도 나왔다. ^^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머지 작업을 하기 위해 인사를 드리고 바로 일어났다.

오후 작업은 더 힘들었다. 사포질을 대강 끝내고 드디어 페인트칠에 들어갔다. 색은 이쁜 노란색. 방범창 구석구석을 칠하기 시작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방범창에 미관을 위해 만들어 놓은, 그러니까 믿믿하게 일자로 된 프레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구부려서 만들어 놓은 포인트(?) 같은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붓으로 그 곳을 칠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혁준이형이 좀더 작은 붓을 사왔다. 내가 작은 붓을 들고 그 칠하기 어려운 부분을 맏고, 명섭이는 큰 곳을 칠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칠하다 보니 페인트가 뻑뻑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혁준이형이 신나를 사러 다녀왔다. 사온 신나를 보니까 'Thinner'라고 쓰여있는 것이 아닌가. 신나, 신나라고 말했었는데, 신나가 페인트를 희석한다는 의미의 이름이었다는 걸 그 때서야 알았다. 이제는 신나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페인트칠을 했다. 아무래도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미숙해서 붓자국도 생기고, 정신집중하여 페인트칠을 하다가 손과 몸은 물론이고 옷에도 페인트가 묻고, 심지어 머리카락에도 묻어서 오늘 이곳에서 페인트칠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노랗게 되어버렸다.

그 따갑던 태양이 뉘었뉘었 넘어가는 시각이 되어서야 방범창 페인트칠이 끝날 수 있었다. 그런데 페인트가 조금 남아서 탁아소의 대문과 유일한 놀이기구인 그네도 노랗게 칠해주었다. 이렇게 페인트와 땀으로 범벅이 된 우리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탁아소 선생님을 뒤로 하고 트라이시클로 집에 돌아왔다.

우리의 땀으로 완성한 페인트칠



하루종일 페인트 칠하느라 힘이 다 빠진 우리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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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4일 화요일

오늘은 불침번을 하는 날이었다. 2시부터인데 전 시간에 하는 명섭이가 늦게 깨워서 2시 30분에 일어났다. 일어나보니 성옥이와 은영이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불침번의 임무를 다 하고 나니 성옥이와 은영이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명섭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6시 30분이 되었다. 너무나 피곤해서 바로 쓰러져 자버렸다.

자다가 일어나니 아침 10시가 넘어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아침 식사를 했기 때문에 밥도 못 먹었다. 일어나보니 사람들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태권도팀인 길임누나, 승용이형, 용보만 남이있고 다들 일정에 맞추어 나간 것이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태권도 연습과 수업 구상을 같이 했다.

점심 때가 되니까 수업하러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왔다. 아이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는 것이 전체적인 평이었다. 학교이긴 하지만 미술 수업이 한 달에 한 번 밖에 없고, 한국어 교육도 매우 좋아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의 태권도 수업도 좋아할 것인지...

점심을 먹고 마무리를 한 후에 드디어 첫 수업을 하러 갔다. 첫 수업은 NVC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시작 시각은 오후 3시. 집에 남아있던 길임누나, 승용이형, 나, 용보, 명섭이, 선미, 용래형, 성희, 그리고 교수님이 수업을 하기 위해 NVC로 갔다. 수업 장소는 우선 NVC 근처에 있는 체육관 앞뜰이었다. 2시 40분 경에 갔는데 아이들이 별루 없었다. 몇몇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여기서 태권도 수업을 하는 것은 알지만, 자기들은 아니라고 말했다. 조금 더 기다리니까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이 서서히 나타났다. 예정된 시간인 3시가 조금 넘어서 말론 교수님이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오셨다.

첫 수업...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미리 준비한 순서를 따라 진행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간단한 인사말. '우리는 한국 대학생들이며, 이곳에 봉사활동을 위해 왔다. 여러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게 되어 정말 기쁘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우리 멤버 소개. Tommy 용보, David 나, Augustino 승용이형, Chelsea 길임누나 이렇게 네 명이다(영어 이름은 NVC 총장님의 요청으로 만들었다. 우리들의 이름이 발음하기도 무척 어렵고, 더군다나 기억하기가 매우 힘들어서, 영어 이름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다. 만들었더니 금방 외우고 불러주었다. 내 이름은 명섭이가 하나 택해 준 것이다). 다음은 태권도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 '태권도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무술이다. 5000여년이나 되는 긴 역사를 가졌다' 이정도였다. 하자면 끝이 없는 이야기이나, 내 영어 실력도 모자라고 해 봐야 재미없을 것 같아서 길게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쇼타임. 그 동안 연습했던 '고려'를 했다. 다들 신기하게 보는 것 같았다. '고려'에 이어 판자 격파를 했다. 잘랐던 판자를 두 장 겹쳐 들고 격파를 보여주었다. 다음은 준비운동. 태권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꼭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도 웃기는지 학생들이 웃기만 하고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은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푸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를 해 두었다. 그리고 태권도의 기본 자세를 알려주었따. 차렷, 준비, 주춤서기, 앞서기, 앞굽이, 지르기, 앞차기, 막기 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수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태권도복을 입은 어느 필리핀 사람이 와서 우리의 수업을 도와주었다. 이름은 프레디. 그의 딸 재클린도 같이 도와주었다. 너무 급하게 준비하느라 미처 가져오지 못했던 태권도용 미트도 네 개가 가져와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내가 영어로 세세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자세들을 따갈로그어와 영어를 섞어서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첫 수업을 마쳤다. 두 번째 수업은 4시부터였다. 역시나 4시 정각에 시작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고등학생(필리핀에서는 초등학교 6년, 고등학교 4년, 대학교 4년, 이렇게 학교를 다닌다. 우리 나라의 중학교 계념은 없다. 그래서 고등학생, 대학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이곳 고등학교 4학년이라 해봐야 우리 나라 고등학교 1학년과 나이가 같기 때문이다)학들이 하나둘 모여서 시작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들은 초등학생들보다 수업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머리가 좀더 커서 그런지, 말을 안 듣는 학생들이 조금 있었고, 또 첫 수업에서 너무 소리를 질러서(실외이고 바로 옆에 차가 쌩쌩 다녀서 왠만한 소리는 잘 안 들렸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순서는 첫번째 수업과 동일하게 진행했다. 나이는 더 많지만 태권도에 대해 모르는 것은 매일반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의 수업이 끝나고 NVC Capital로 옮겨서 대학생 수업을 준비했다. 약속된 5시가 다 되었는데 수업을 받을 학생들이 보이질 않았다. 결국은 7명이 나왔는데, 모두 여학생들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끄러워서 다들 안 나온다는 것이었다. 우선 7명을 데리고 수업을 시작했다. 역시 이들도 태권도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초등, 고등학생들의 수업과 같게 진행했다. 학생 수가 7명 밖에 안 되니까 우리 네 명이 직접 맨투맨으로 가르쳐 주기가 훨씬 수월했다. 쑥쓰러워 하면서도 시키는데로 열심히 따라해 주었다. 한 시간의 시간이 다 지나가고 인사를 하며 수업을 마쳤다.

수업을 마치고 Jonny가 우리를 집에 까지 태워주기로 했다. 집에 가기 전에 Royal Supermart에 가서 음료수와 약간의 맥주를 사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필리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 하루 종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더니 목이 좀 칼칼하다. 10시 회의 시간이 되었고, 회의를 한 후에 바로 잠이 들었다. 내일은 5시에서 6시까지 불침번이다. 아...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하기 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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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3일 월요일

드디어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나서 명섭이가 10시까지 NVC로 가서 프로그램 논의를 해야 한다길래 나와 용보가 태권도 클래스 일도 있고 해서 같이 따라가고, 성희는 NVC의 컴퓨터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합류했다.

트라이시클(마닐라에 1박할 때에는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만 들었는데, 이 곳에 온 이후 단거리 운송수단으로 트라이시클은 거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우리 나라와 같이 버스나 지하철 등 공공 대중 교통이 없는 필리핀에서, 트라이시클은 사람, 짐 등을 운반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보통 오토바이의 옆에 사람이 탈 수 있는 혹은 짐을 실을 수 있는 것을 붙여달은 것이다. 승차정원은 운전사까지 10명... 운전사와 같이 오토바이에 총 세 명이 앉을 수 있고, 옆에 붙은 것의 앞쪽에 3명, 뒷쪽에 4명이 앉을 수 있다. 그러나 필리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체구가 작아서 쉽게 다 앉을 수 있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이 9명이나 한 트라이시클에 타는 것은 매우 힘들다.)을 타고 NVC로 갔다. 가서 명섭이가 말론 교수님과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하고, 성희는 학교의 컴퓨터 시설을 보기 위해 아더와 같이 갔다. 결국은 오늘 시작하기로 한 태권도 수업은 없는 것으로 하였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발할 시간도 필요하고, 우리도 더 준비할 시간이 있으면 더 좋기 때문이었다. 나랑 용보는 명섭이와 말론 교수님을 따라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돌아보았고, 우리가 어디서 무슨 수업을 가지게 되는지도 알아보았다.

그 후 태권도 클래스에서 사용할 격파용 나무판을 사기 위해 우리 네 명과 아더가 같이 시장에 갔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우리가 찾는 격파용 송판은 구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잘 부러질 것 같은 합판을 두 장 골랐다. 이 두 장을 다시 트라이시클을 이용하여 NVC로 옮겼다. 그리고 아더가 이것을 알맞은 크기로 잘 잘라준다고 하는 약속을 받고 다시 시장으로 갔다. 우선은 점심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성희가 안다는 곳으로 갔는데, 'Willhelem Tell'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국인이 하는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테이블이 6개 정도 있는 작은 레스토랑이었으나, 친절하게 서비스를 해 주어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네 명이서 요리 세 가지를 시켜서 맛있게 먹고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

명섭이와 성희는 바로 집으로 가기 위해 트라이시클을 잡아탔다. 나와 용보는 태권도 클래스에서 사용할 풍선과 압정을 구하기 위해 Royal Mart로 갔다. 풍선은 쉽게 찾았지만, 압정은 영어 단어를 몰라서 좀 해매었는데... 그래도 금방 찾아서 살 수 있었다. 압정은 영어로 Thumb Tacks. 그리고 면도에 필요한 쉐이빙폼 하나와 아이스티 가루를 사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트라이시클을 잡아서 집(Salas Fish Pond, Caano)에 가려고 하니까 시장에서는 너무 멀어서 안 가겠다는 것이었다. 가려거든 트라이시클 자리(보통 8좌석, 많은 것은 9좌석)의 비용을 다 지불해야 간다는 것이다. 원래 집에서 시장까지, 시장에서 집까지는 1인당 4페소(여기는 무조건 머리수이다. 물론 거리가 멀어지면 요금도 올라가지만)이다. 트라이시클 운전사 말이 멀어서 8자리 가격, 즉 4 곱하기 8은 32페소를 내야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휘발류 가격이 16페소라나 하는 말을 하면서.. 아주 신기한 것은 사람이 많아지면(약 4명 이상) 별 말이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멀리 갈 때에는 사람이 많이 타지 않으면 요금을 많이 받지 못하니까(또 돌아올 때 빈 차로 오니까) 많은 요금을 받겠다는 이야기이다. 나와 용보는 어이가 없어서 이 트라이시클, 저 트라이시클 다 물어보고 다녔으나 대답은 똑같았다. 가끔 32페소를 30페소로 깎았다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8페소면 되는 것을 30페소 내기가 너무 아까웠던 나와 용보는 더 싸게 갈 트라이시클을 찾아 헤메었다. 그러던 중 어느 젊은 트라이시클 운전사를 만나 흥정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 30페소 내라, 아니면 안 간다, 이런 식이었는데 이 사람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어서 우리를 이해시켰다. 그리고 한 사람이 4페소씩 내고 가는 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터미널에 가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기다려 트라이시클의 좌석을 다 채우고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바로 가서 태권도 교육 점검도 해야 했기에) 그 사람과 흥정을 해서 25페소에 집까지 가기로 했다. 겨우 집에 도착하여 계산을 하려고 보니 나나 용보나 소액환으로 25페소가 안 나오는 것이다. 다 100페소, 500페소의 고액환(100페소 해봐야 3000원이다) 밖에 없어서 겨우겨우 소액환을 모아보니 딱 20페소가 나왔다. 그랬더니 괜찮다면서 그냥 20페소만 받는 것이다. 나와 용보는 좀 황당하고(왜? 30페소 받아야 한다는데 20페소만 받으니까) 어떻게 보면 고맙기도 해서 Thank you를 연발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아직까지 필리핀의 교통 체계, 그 중에서도 요금 체계를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다. 더 이하는 안 된다면서 잔돈이 그것 밖에 없으니 그냥 그 돈만 받고...(트라이시클이 잔돈을 가지고 다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10페소나 20페소 지폐까지는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100페소를 받고 잔돈을 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돌아와서 태권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오늘 태권도를 필두로 전체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우리와 NVC의 사정으로 오늘 일정은 다 취소되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태권도 클래스는 우선 진도를 많이 나가는 것에 치중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나라에서 도장에 다니면 한 달동안 배우는 것이 태극 1장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기본 자세가 매우 중요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태극 3장 까지 가르쳐보자고 했었지만, 조금 줄여서 우선 태극 2장 까지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원래 봉사활동 기간이 3주이지만, 사정상 앞, 뒤로 못하는 날이 생겨서 실제적인 봉사활동 기간은 2주, 정확히 하면 태권도의 경우 8번 뿐이다. 그래서 기본에 더욱 충실하게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다시 태권도 이야기를 했다. 우선 필리핀의 공식 언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수업을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 교육의 대상이 초등학교 고학년, 고등학생, 대학생이기 때문에 영어로 수업을 하더라도 학생들이 수업을 이해하는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태권도를 영어로 잘 설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첫 수업의 순서를 정했다. 첫번째로 '인사', 그리고 '맴버 소개', '태권도에 대한 이야기', '태권도 시범', '태권도 기본자세 익히기' 등을 생각해 보았다. 물론 모든 단계에서 영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내가 말로 하는 것을 맡고, 용보는 시범, 길임 누나와 승용이형은 돌아다니면서 자세 교정을 해 주기로 했다.

우리 태권도팀



이렇게 열띤 토론과 태권도 연습을 하다보니 회의시간이 다가왔다. 회의를 간단히 끝내고 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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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2일 일요일

언제쯤일까... 어제 저녁 식사를 하다가 입맛도 없고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밖에서 닭들이 합창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닭들의 합창을 무시한채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일어난 시각은 8시가 좀 넘어서였다. 일어나 보니 다른 사람 대부분이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간단하게 빵과 우유를 먹고 있었는데, 내가 일어나서 마지막 남은 식빵 한 조각과 우유 한 모금을 먹었다. 그래서 나보다 조금 늦게 마지막으로 일어난 명섭이부터는 굶을 수 밖에 없었다. ^^;

오늘은 아침에 바다 낚시를 가기로 했다. 교수님이 주축이 되어 몇 명 가는 것인데, 전원 가는 것은 아니고 가고 싶은 사람만 가는 것이다. 바다 낚시도 좋지만 보라카이섬을 돌아보고 싶어서 바다 낚시는 포기했다. 낚시를 안 갈 사람들은삼삼오오 모여서 섬 구경에 나섰다. 그러던 중 낚시 배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역시나 정해진 시간에 배가 오지 않아서 낚시 가려던 사람들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나갔다. 가만히 앉아 DECS Hostel 구경을 하다보니 다 나가버리고
혁준이형, 승용이형, 나, 명섭이, 지은이, 그리고 자고 있는 정아누나만 남아버렸다. 방갈로를 다 비우고 나갈 수 없어서 승용이형, 지은이, 나, 명섭이가 한 시간만 섬을 둘러보고 돌아오고, 그 후에 혁준이형과 정아누나가 나가기로 했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의 강아지와 함께..



우선 세계 3대 해변 중 하나라는 화이트 비치에 나갔다. 어제도 봤지만 또 다른 모습이었다. 만조 시간이었는지 어제의 넓은 백사장은 간데 없고 상가가 있는 바로 앞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있었다. 화이트 비취에서 사진도 조금 찍고,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 구경도 하다가 기념 엽서도 샀다. 잠시 시간이 지난 줄 알고 있었는데 금방 한 시간이 지나버렸다. 약속한데로 다시 DECS Hostel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일찍 나갔던 사람들 몇 명이 돌아와있어서 다시 나갔다. ^^; 혁준이형과 정아누나는 한국으로 전화하기 위해 전화할 곳을 찾아갔고(필리핀에서는 아무 공중전화 가지고 국제전화를 할 수 없다. 중국도 그랬지만, 국제전화가 되는 공중전화가 따로 있다), 승용이형과 지은이는 오토바이 하나를 빌려서(보라카이에서는 오토바이를 빌려준다. Off-road 경주용 오토바이도 있고, 우리나라 음식 배달용 오토바이(시티100) 같은 것도 있다. 후자는 한 시간에 100페소(한화 약 3000원)에 빌릴수 있다) 가버렸다.

나랑 명섭이는 튼튼한 다리로 섬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아까 갔던 반대방향으로 가다보니 섬을 횡단할 수 있는 길이 나와서 화이트 비치 반대쪽 해변에 가보기로 하고 그 길을 따라갔다(보라카이섬은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 좁다. 한마대로 개뼈처럼... ^^; 길이가 7km, 폭이 약 1km. 가운데 부분은 좁고 길며, 양 끝은 넓고 야트막한 산도 있다). 천천히 걸어갔는데도 20분 정도 걸으니까 반대편 해변이 나왔다. 이 쪽 해변은 화이트 비치와는 달리 경사가 급했다. 화이트 비치는 우리나라 서해안처럼 경사가 완만하고, 이 쪽 해변은 우리나라 동해한처럼 경사가 급했다. 해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숙소인 DECS Hostel로 향했다. 숙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칼리보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겨서 나와 배를 타고 카티클란으로 갔다.

멋진 바다를 배경으로~



카티클란에서 다시 지푸니를 타고 칼리보로 왔다. 보라카이로 갈때와는 달리 하루 놀고 돌아가는 지푸니 안은 매우 조용했다. 까노의 우리 집에 도착하니 NVC 총장님의 초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정리하고 다 씻도 이쁘게 차려입고 NVC Admin으로 갔다. 놀라운 것은 남자들은 정장(에준하는 깔끔한 남방과 양복 바지, 구두)이 하나도 없는데 반해, 여자들은 거의 하나씩 원피스가 있었다. 물론 초대받아서 가는데 이쁘게 입는 것은 좋지만,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데 원피스를 가져오는 것을 보니 '남자와 여자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Quimpo씨 댁에 가기 전에 차려 입고..



NVC Admin에는 총장님과 총장님의 어머니가 계셨다. 거실에 단정히 앉어있다가 총장님과 총장님의 남편, 어머니께서 나오셔서 차례로 인사하고 소개를 했다(필리핀 사람들이 우리의 한국 이름을 외우는 것을 매우 어려워해서 다들 영어 이름을 하나씩 지었다. 원래 있는 사람들은 그걸 쓰지만 난 그 동안 영어 이름을 써본적이 없어서 하나 만들었다. David... ^^;). 잠시후 식사가 나오고 높으신 분들(총장님, 남편, 어머님, 교수님 등)은 식당에서 드시고 우리들은 거실에서 부페처럼 식사를 했다. 역시 한국계여서 그런지 거실이며 방에 한국 물건이 많았다(이 가족의 성은 Quimpo이다. 한국 경기도 김포에서 온 사람들으 후손이라고 했다. 집은 물론이고 학교 총장실에도 한국 물건이 많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 사람 많이 닮은듯 하고...). 식사를 하고 총장님의 아들들이자 NVC의 선생님인 Jonny와 Michael, 그 집 식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한 마디... 일 처리 할 것이 있어서 화장실을 찾아갔는데, 역시나 좌변기에 엉덩이 대는 부분(뚜껑말고 하나 더 있는거)이 없는 것이다. 이 이후에도 많은 화장실을 가봤지만 그 부분이 있는 곳은 우리가 묵었던 까노의 집과 마닐라의 호텔뿐이었다. 왜 그 부분을 없애버린 걸까? 미스테리다.....

저녁 식사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까노로 돌아왔다. 필리핀에서의 첫 주말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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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1일 토요일

회의가 끝나고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5시가 되니까 앞 조인 용래형이 나를 깨웠다. 너무나 졸려서 겨우겨우 일어나 정신을 차리기 위해 샤워를 했다. 그러고나오니까 5시 15분 정도 되었다. 정신을 대강 차리고 밖에 나와 보니 이제 해가 막 떠오른 후였다. 아침의 노을이 정말 멋있었다. 이왕에 불침번을 할 거라면 일찍(12시에서 1시, 혹은 1시에서 2시까지)이나 이 시간쯤에 일어나서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5시 30분이 되니까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결
국은 10분 정도 졸고... ^^; 6시가 되어 선미에게 식사 당번을 깨우라고 시키고는 그 길로 다시 2층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오늘은 보라카이(Boracay)로 가는 날이다. 아침 8시까지 NVC Admin(St. Gabriel Hospital 앞)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6시에 다시 잤지만 6시 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간단하게 빵과 우유로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다 하고 전원 모인 시각은 7시 40분 경. 숙소 앞 도로로 나가서 차를 잡기 시작했다. 아침의 Rush Hour여서 그런지 빈 지푸니도, 트라이시클도 찾기 힘들었다. 겨우 지푸니를 잡아타고 NVC Admin에 도착했다. 교수님께서 숙소에서 나오시고 보라카이로 갈 지푸니를 기다렸다. 여기서 여담 한 마디. 중국은 만만디의 나라라고 한다. 시간 관념이 좀 희박하다고 할까... 그러나 작년에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그렇지 않았다. 언제 만나자고 하면 바로 그 시각에 먼저 와서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리핀의 시간 관념에 대해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시간 관념이 좀 희박하다는 것을 며칠 동안의 필리핀 생활로 알수 있었다. 8시까지 오라고 하였으나 지푸니는 8시 30분이 다 되어도 오지 않는 것이다(다른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 사이에 교수님께서는 옆에 있는 St. Gabriel Hospital에 가셔서 어제부터 나기 시작한 몸의 빨간 반점들에 대한 진찰을 받고 오셨다(음.. 여기는 일찍부터 병원을 연다. 하긴 학교도 7시부터 수업시작이라니까...).

카티클란으로 갈 차를 기다리는 중..



교수님께서 치료 받고 오신 후 8시 50분 정도가 되어서야 보라카이로 갈 지푸니가 도착했다. 보통 보는 지푸니보다 훨씬 긴 것이었다. 우리 팀 19명과 교수님, 말론 교수님, 아더, 벤쥐, 이렇게 23명과 지푸니 운전사까지 총 24명, 거기에 짐 부리는 사람 두 명(정확치 않지만..)이 지푸니에 올랐다. 음.. 지푸니는 지프차를 개조해서 사람이 많이 타게 만든 필리핀의 중요 교통 수단의 하나이다. 아무튼 25, 6명의 사람이 우리 나라의 15인승 승합차 만한 지푸니에 다 탄 것이다. 맨 앞 자리는 원래 두 사람 자리지만, 운전석에 두 명, 조수석이 두 명이 탄다(울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뒷자리는 지하철처럼 양쪽에 앉는 방식인데, 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지만, 그 사이에도 작은 의자(혹은 길고 좁은 의자)를 넣어서 사람이 더 앉는다(우리는 그렇게 까진 못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체구가 작다). 이렇게 꾸역꾸역 앉고 보라카이로 출발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은 필리핀 아클란(Aklan)의 칼리보(Kalibo)란 곳이다. 그런데 보라카이는 다른 섬에 있기 때문에 비행기나 배를 타야 하는데, 우리는 배를 타기로 했다. 배는 카티클란(Cartiklan)이라는 곳에 가서 타야 한다. 지푸니를 타고 1시 간 20분 정도를 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것이다. 선착장에 가기 까지 처음에는 바깥 경치를 보며 갔다. 너무 좁아서 보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힘들여 보니까 우리 나라와는 사뭇 다른 시골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 게임을 시작했다. 벤쥐가 뒷자리에 앉아있어서 3,6,9를 설명해 주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약 20명) 원할한 게임 운영에 차질이 생기자, 앞쪽, 뒷쪽으로 나누어 게임을 했다. 이렇게 게임을 하고 가다보니 어느새 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TV나 영화에서, 혹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초록빛 바다... 초록빛 바닷물에 내 손을 담그면... 하는 노래도 불렀다. 이 때 혁준이형의 제안으로 앞쪽, 뒤쪽으로 나누어 노래 대결을 시작했다. 동요, 만화 주제가, 가곡, 바다 관련 노래, 비에 관련된 노래 등등... 이렇게 즐겁게 가다보니 어느새 선착장에 도착했다.

카티클란까지 우리가 타고 온 지푸니



저기 보이는 바다를 건너면, 바로 보라카이!!



선착장에 도착해서 간단한 서류를 한 장씩 작성하고 보라카이로 가는 배를 탔다. 필리핀의 배는 대부분이 매우 낡은 나무배 이다. 옆에는 기울어지지 말라고 나무를 대 놓았다. 이런 배 하나에 우리 팀 전부가 올라타고 보라카이로 향했다.

정말이지 너무나 푸른 바다다. 어찌나 물이 맑은지 부르르릉.. 하고 배가 가는 밑으로 바닥이 스물스물 보일 정도이다. 하얀 모래도 보이고, 검은 바위나 산호초도 보였다.

드디어 보라카이섬에 도착했다. 내리자 마자 보이는 팻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여행 잡지에서 선정한 세계 3대 해변 중 하나로 뽑힌 것이 바로 보라카이섬의 화이트비치(White Beach)이다. 정말 말 그대로 새하얀 모래사장이 끊임없이 이어져있었다. 초록빛 바다에 새하얀 모래사장... 꿈에서 그리던 곳일까. ^^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 캬하~



바로 1박을 할 숙소로 이동했다. DECS Hostel이라는 곳이었다. 방갈로 하나에 팀 멤버들이 들어갔다. 음.. 근데 시설은 열악했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필리핀은 정전이 자주 된다. 오락실에서도 정전되는 것은 다반사... DDR도 있는데 환불이 안 된다나 ^^;), 화장실도 안 좋고, 샤워기에 물도 안 나와서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사용해야 했다. 우선 준비해 온 음식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밥은 다해왔고 김에 참치 등을 넣은 '묻지마 김밥'을 만들어 해결했다. 식사를 다 하고 해변으로 나갔다. 바로 스노클링(Snorkeling)을 하러 가는 것이다. 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배를 기다렸다. 역시나 배는 바로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이에 사진도 조금 찍고, 해변에서 수영도 하고 그랬다. 바다는 초록빛이지만 역시나 짰다. 수영장에서 하는 것처럼 하다보니 싼 바닷물이 입으로 스물스물 들어오는 것이다. 으... 짜다. 바다가 너무 잔잔해서 수영하기는 매우 좋았다. 또,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한참 낮으니까 바닷물이 따뜻했다.

화이트비치에서 배를 기다리며..



드디어 배가 도착했다. 배는 보라카이로 오는 그런 배와 거의 같은 것이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스노클링을 시작했다. 처음에 배가 머물고 교수님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스노클 하나씩 입에 물고 구명조끼 하나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첨에는 구명조끼가 너무 불편하고 스노클로 숨을 쉬는 것이 익숙치 않아서 짠 보라카이 바닷물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코로 쉬지 않고 입으로만 쉬는 호흡법을 익혀서 물 아래 세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첫번째 장소는 조류가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구명조끼 때문에 그냥 물에 떠 있고..) 조류를 타고 배 뒤쪽으로 한없이 흘러갔다. 그러다 보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너무 힘들고.. ^^; 가는 건 조류를 타고 쉽게 가지만, 오기가 힘들었당. 수면 밑에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온갖 색상의 산호초, 바위들,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 그야말로 TV나 잡지, 혹은 신문에서 보던, 나와는 별 관계 없어 보이던 그런 풍경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곳으로 이동했다. 두번째 스노클링 장소는 첫번째 장소와는 달리 조류가 거의 없었다. 구명조끼는 아예 입지 않기로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팔을 움직이니까 어깨 주위로 살이 조금씩 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바닷물이어서 그런지 구명조끼가 없어도 잘 뜰 수 있었다. 수심은 약 4, 5 미터였지만 두려움을 갖지 않으니까 아무 문제가 없었다. 두번째 장소는 첫번째 장소보다는 화려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도 조금 더 깊고 물이 잔잔해서 수영하기는 더 좋았다. 첨에는 해변이 가까워 보여서 용보과 같이 해변까지 왕복해 보자고 해서 가보았는데, 1/3까지 가는데도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천천히 다시 배로 돌아왔다. 그 다음 부터는 배 주위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같이 놀았다. 바닥을 보니 산호도 있고, 불가사리도 있어서 그걸 채취(^^) 하려고 잠수를 했다. 불가사리는 그냥 주어오면 되지만, 산호는 힘으로 떼어야 하기 때문에 좀 힘들었다. 그래도 몇 번 해 보니 익숙해 져서 산호랑 불가사리를 몇 개씩 집어왔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 올라와서 서로 건진 것을 보며 이야기를 하면서 보라카이섬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필리핀은 아열대 기후라서 그런지 스콜이 시도때도 없이 오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하필 돌아갈 때 심하게 내린 것이었다. 수영을 하고 나와서 몸에 물기가 있는데다가 바람은 몰아치고, 파도가 튀고 하니까 아열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추워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 팀이 넉넉하게 탈 수 있는 배였지만, 서로서로 꼭 붙어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보라카이섬으로 돌아갔다. 비가 오고 파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배가 나올 때보다 너무 느리게 돌아가서 시간이 한참 걸렸다. 춥고 배고프고, 정말 상상치 못했던 일을 겪었다.

이렇게 호되게 보라카이섬에서의 첫 스노클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해물을 먹기로 했다. 교수님께서 준비해 주시기로 하셔서, 시장에 가셔서 갖은 해물(새우, 게 등등)을 사오시고 요리해 주셨다. 난 고생도 하고 필리핀에서 입맛을 잃어서 새우 한 마리와 Yellow tail이라는 참치회 네 조각 정도 먹고 바로 8시에 자버렸다. 그리고는 내일 아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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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30일 금요일

김치를 담그고 명섭이와 용래형이 올라왔다.그 시각이 약 2시 쯤. 용보와 명섭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보가 이야기를 너무나 재미있게 해서 시간이 금방 갔다. 조금 이야기 한 것 같은데 벌써 5시가 된 것이었다. 용보와 나는 명섭이가 김치 담그는 동안 잠을 잤지만, 명섭이는 못 잤기 때문에 피곤해서 계속 졸다가 드디어는 자버렸다. 용보의 '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벌써 6시 30분.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자버렸고, 용보는 태권도 연습을 했다.

회의 중에 한 장~!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이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다들 쇼핑을 하기 위해나갔다. 나는 움직이기도 귀찮고, 모르는 곳에 나가는 것도 좀 그래서 그냥 남아있기로 했다. 나 말고도 명섭이, 혁준이형, 현주, 길임누나가 남아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 다 되었다.

점심 후 말론 교수님과 벤쥐가 왔다. 우리가 할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였다. 프로그램은 대강 준비가 되어있지만, 그 세세한 일정을 NVC와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움... 잘 안 되는 영어로만 대화를 하니까 머리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몇 마디 끼어들었더니..^^; 아무튼, 나중에는 같이 듣는 것 조차 포기하고, 샤워하고 근처도 배회하고 그랬다. 결국은 명섭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 ^^

화려한 계획표!!!



주무시던 교수님께서 일어나시고, 시각도 거의 5시가 다 되어가는데 나갔던 사람들은 안 들어고 배도 고프고 해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라면을 끓여먹으니까 삼삼오오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들 식사를 해결하고 왔다고 해서, 있던 사람들과 말론 교수님, 벤쥐와 같이 먹었다. 우리에게는 맛있지만, 말론 교수님과 벤쥐에게는 매웠는지 많이 먹지는 않았다.

저녁에는 회의를 했다. 주된 것은 '불침번'. 결국은 필요하니까 하는 것으로 하고 방법이 논의의 초점이 되었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중지를 모아 2인 1조로 하고, 1조당 한 시간씩 계속 이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나는 11번을 뽑아서 12번을 뽑은 선미와 불침번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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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29일 목요일

필리핀에서 하루가 지났다. ^^ 오자마자 자정을 넘겨 버린 것이다. 활주로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공항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공항이 깨끗했다. 차례를 기다려 비행기에서 내리고 입국 심사를 마치고 카고로 넣었던 짐을 찾기 시작했다.

짐은 생각보다 늦게 나왔다. 김포에서 비행기를 탈 때 빨리 넣어서 그렇다고 한다. 결국 짐 찾는데만도 약 30분 정도 소모를 하고 다시 세관으로 갔다. 필리핀 세관은 생각보다 까다롭게 심사를 했다. 나는 여행용 가방 두 개만을 들고 바로 빠져나왔지만, 박스를 들고 가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박스를 개봉해야만 했다. 그래서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

여행사 직원을 만나고 우리가 탈 버스가 도착하여 짐을 다 싣고 버스에 오른 시각이 1시(서울 시각으로 2시, 이제부터 필리핀 시각만 적는당.)였다. 흑흑흑...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을 들으며 호텔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호텔은 Bay View Park Hotel 이었다.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호텔 앞에 있는 길 건너편이 해변인 것 같았다. 짐을 다시 다 내리고 방 배정을 받아 들어가보니 방이 기대했던 것 보다 좋았다. 움... 여기서 며칠 더 머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큰 방에 모여 간단한 회의를 하면서 교수님을 말씀을 듣고 마니또도 뽑았다.

이러고 방에 돌아오니 두시 반... 샤워 하고 일기 쓰니 세시 십분... 내일 6시에 일어나서 밥 먹고 7시에 공항으로 출발이라는데, 이제 죽었당.

아침이다. 모닝콜이 5시 50분 쯤에 울렸다. 우움... 자기 시작한지 2시간 반 밖에 안 되었는데... 그래도 씻고 밥 먹고 준비하기 위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면도도 하고 대강 씻고 용래형 깨워서 같이 준비한 후에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는 뷔페였다. 나는 시리얼과 우유로 간단히 시작하여, 베이컨 조금 먹고, 페스츄리와 오렌지 쥬스로 마무리를 지었다. 다 먹으니까 6시 35분쯤 되었다. 다시 방에 용래형과 올라가서 양치질 하고 짐 다시 꾸려서 내려오니 6시 45분... 사람들을 기다리고 가이드 아저씨가 오시고 버스가 도착해서 짐을 다 싣고 공항으로 떠났다.

어제 필리핀에 도착한 그 국제 공항 바로 옆에 있는 국내선 공항이다. 공항 이름이 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름 까먹었당.)의 남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가는 길이 조금 막혀서 가이드 아저씨께서 필리핀의 교통수단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해 주셨다. 우선 우리나라와 같은 버스가 있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이 놓고간 지프를 개조해 사용하는 지푸니, 트라이시클도 있고, 우리 나라 택시와 비슷한 모양의 택시, 자전거 등을 교통수단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특히 지푸니는 필리핀의 명물로서 지프를 개조하여 뒷쪽에 사람이 마주보며 타는 구조로 되어있고, 세계 각지로 수출까지 한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인기있는 차종은 현대 스타렉스라고 한다. 스타렉스를 가진 사람은 사회에서 그만한 대접을 받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나라 차가 거리에 심심치 않게 보였다. 현대 스타렉스, 쌍용 이스타나, 기아 프라이드... 프라이드는 택시로 사용되기도 한다. 필리핀은 섬이 대단히 많아서(약 5400여개), 육로의 교통(버스, 지하철 등) 보다는 해상교통이나 항공교통이 대단히 발달되어있다고 한다.

필리핀의 교육열은 대단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를 가던지 학교와 교회는 꼭 있다고 가이드 아저씨가 알려주셨다. 학교는 교육열 때문에, 교회는 오랜 스페인 지배의 영향으로 가톨릭이 국교(일 것이다. 확실치 않지만..) 이기 때문에 곳곳에 있다.

국내선 공항에 도착하여 화장실도 가고, 필리핀 페소로 환전도 하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페소는 스페인과 필리핀에서 사용하는 화폐 단위라고 한다. 필리핀 페소는 1달러가 45.5 페소 정도로 환전이 되었다. 1페소는 약 한국돈 약 30원이라고 한다.

드디어 뱅기에 올랐다. 이번에도 필리핀 항공을 이용하여 마닐라에서 아클란(Aklan)주의 칼리보(Kalibo)로 옮기게 되었다. 이 칼리보에는 한국의 김포에서 이주해온 사람의 후손들이 힘을 꽈악 쥐고 있다. 그래서 한 시의 이름은 Quimpo(김포)이며, Quimpo family가 있어서 이 지역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지고 있다. Quimpo family는 정치, 교육, 문화 등등 여러 지역에 지도자를 많이 배출했고, 현재에도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칼리보 공항에 내리니 무더위가 우리를 엄습해 왔다. 시원하고 깨끗한 마닐라 공항(3년 전 쯤에 개장했다고 한다)에 비하면 칼리보 공항은 그야말로 시골 버스터미널 대합실 수준이다. 활주로와 건물 하나 달랑 있는 미니 공항인 것이다. 짐을 찾아서 공항을 나서니 우리를 마중 나오는 분들이 계셨다. 칼리보의 Northwestern Vasiyan Colleges에서 나오신 분들이었다.

짐을 겨우 싣고 우리가 머물 장소에 도착했다. 주위는 양어장, 논과 밭으로 둘러쌓인 덩그런 집 한 채. 어떻게 보면 자연에 푹 파묻힌 좋은 곳이라 할 수 있겠지만, 주변에 양어장이 있어서 모기가 장난 아닐 것 같았다. 숙소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30분 경이었다. NVC 총장님께서 우리를 점심 초대 하셔서 그 학교로 다시 출발했다.

학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차를 타고 약 10분 내외의 거리였다. 학교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필리핀에는 중학교가 없다)가 한 건물에 다 있었다. 우선 총장님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 옆에 마련된 곳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었다. 쌀밥과 잡채 같은 음식(그러나 맛은 완전히 컵라면이었다), 파인애플, 닭튀김으로 이루어진 점심이었다. 아침을 그리 많이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팠던 참에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NVC의 입학식이 있는 날이다. 원래는 어제였지만,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일정을 늦추어서 우리와 같이 행사를 하게 된 것이다. 순서표가 있었는데 영어로 쓰여있고, 순서표가 있음에도 이리저리 순서를 뒤바꾸고, 또 영어 발음이 우리 나라와 차이가 많이 나서 알아듣기 힘든 입학식이었다. 3시부터 시작한 입학식은 교직원 소개 등등 많은 시간동안 지속되었다. 그 중에 우리 팀에서 교수님와 정아 누나가 한 말씀씩 하고 사물놀이를 했다. 입학식은 6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입학식에서 본 민속춤 공연



숙소로 사용할 곳은 그리 넓은 곳이 아니다. 화장실 하나, 침대가 두 개씩 들어있는 작은 방이 두 개, 2층은 그냥 방이라기보다 여러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처음에는 2층에서 남학생 5명이 살고, 방 두 개에 여학생 4명 사용하고 나머지 인원은 다른 곳에서 묵으려 했었다. 그러나 서로 떨어져 있으면 회의할 때나 연습할 때에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서, 다소 불편하더라도 같이 지내는 쪽으로 하기로 하고, 결국은 작은 이 숙소에서 다 같이 살기로 했다.

우리가 3주 동안 먹고 살 집 앞에서 찰칵~!



저녁 준비하는 동안 태권도 연습을 시작했다. 원래는 없애기로 했던 태권도 시간을 새로 온 용보로 인해 그 시간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용보가 사범을 하고 승용이형, 나, 그리고 길임 누나까지 네 명이 태권도 조가 되었다. 첫 연습은 태극 1장... 유치원 다닐 때 하고 거의 처음 하는 것이었지만, 다시 연습을 하게 되니까 참 재미있었다. 태극 1장, 태극 2장을 연습해 보고 다음은 고려로 들어갔다. 태극 1, 2, 3장은 연습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로 했고, 고려와 태백, 금강 등은 전시용(^^)으로 마련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고려를 전시용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고려의 첫 동작은 기억이 났지만 그 다음은... 그래도 용보가 알려주는데로 열심히 연습해서 하나하나 이어가는 그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오늘은 태극 1장과 2장을 익히고, 고려로 마무리를 지었다.

저녁을 먹은 후 회의에 들어갔다. 아직 우리가 이 곳에 있을 동안의 세부적인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정하는 것에 회의가 집중되었다. 우리가 준비한 것을 크게 나누면, 태권도 교육, 한국어 교육, 미술 교육, 전통 놀이, 이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기나긴 회의 끝에 태권도 교육과 한국어 교육은 매일 하는 것으로 우선 가닥을 잡고, 명섭이가 큰 틀을 짜기로 하고 긴 회의를 마쳤다.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회의가 끝나고 바로 자버렸다. 그러던 중 명섭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잠 깬다. 무시를 하고 계속 자려고 했으나 무시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일어난 시각이 2시 15분. 김치를 담그느라고 잘 곳을 못 찾은 명섭이가 올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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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28일 수요일

오늘은 드디어 출국을 하는 날이다. 어제도 매우 늦게 일어났던 나는 보통 때와는 다르게 일찍 일어났다. 7시 20분... 내 방을 나오니까 엄마와 동생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래도 어쩌랴. 일찍 일어나서 짐을 챙겨야 하는 것을. 아침을 먹고 인터넷을 조금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9시 30분 쯤 해서 볼일을 보러 나왔다.

우선 우체국에 가서 우편물을 하나 부치고 나왔다. 바로 이발을 하려고 했으나,미용실이 10시 20분 부터 시작이라서 엄마께 연락을 하고 쇼핑을 먼저 하기로 했다. 우선 필리핀에 가서 사용할 필름을 사고, 백화점 개점 시간을 잠시 기다렸다가 트렁크형 수영복과 양말을 샀다. 엄마는 이것을 들고 집에 가시고 나는 미용실로 향해 이발을 하고 돌아갔다.

머리를 산뜻하게 깍은 후에 집에 와서 마지막 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짐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작년 중국에 갈 때보다 많이 준 듯 했다. 노트북을 가져가는데도 작년보다 많이 줄어서 무언가 빠뜨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다 싼 후에 아빠가 오셔서 점심을 먹고 출발을 했다. 나는 혹시나 길이 막히지 않을까 해서 일찍 출발하자고 했기 때문에 2시에 공항에서 모이는 것이었지만, 집에서는 12시 50분 경에 출발했다. 아빠 차를 타고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를 타고 가니까 길도 막히지 않아서 40분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엄마와 아빠께 잘 다녀 오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짐을 들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약속 장소인 국제선 제 2청사 2층에 있는 서점 앞으로 갔더니 성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음.. 내가 처음일 줄 알았는데. ^^; 아무튼 조금 더 기다리니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여성동지들에게 둘러싸여..



그런데 큰일이 났다. 알고보니 출국허가증을 안 가지고 온 것이다. 우리 팀에 있는 남자 5명(단장님이신 숙대 교수님 포함하면 여섯 명) 중에서 병역 미필은 나랑 울 팀 막내 용보 뿐이 없다. 그런데 병역 미필자가 출국 시 제출해야 하는 출국허가증을 받아놓고 집에 두고 온 것이다. 오옴, 큰 일 났다... 하는데, 용보가 그거 없어도 된다는 말에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신고 하는 곳에 가서 문의를 해 보니 받아 놓았다면 그 곳에서 조회를 해보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조회가 원만히 진행되어 출국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환전은 많이 안 했다. 필리핀 페소는 구할 수 없어서 US 달러로 환전하기로 했다. 나는 20만원을 들고 왔는데, 150 달러를 환전하기 위해 17만 1천 30원을 내고 환전을 했다. 누구는 350 달러, 누구는 400 달러 환전했다는데, 그렇게 많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작년에는 선물을 사서 약 15, 6 만원 썼는데, 올해에는 선물도 안 살 생각이니 필리핀이 중국보다 물가가 더 놓다고 해도 그리 문제될 것 같지는 안다.

사람들이 모이고 나서부터는 팀 공동 짐을 다시 정리하고 포장하기 시작했다. 20명이 약 3주간 사용할 물건들이어서인지 챙기려 하니까 엄청난 양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가 PAS 청년봉사단 중에서 첫 출국팀이어서 KBS에서 취재를 나왔다. 우리 팀이 공항에 들어서는 모습과 짐을 꾸리는 장면, 서로 인원 체크도 하고 회의도 하는 모습을 연출 반, 실제 상황 반으로 진행했다. 인터뷰도 했는데, 나는 이번 활동이 두 번째라는 이유로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되어 첫 인터뷰를, 그것도 카메라 앞에서 하게 되었다. 인터뷰의 요지는 '이번에 다시 봉사활동을 가는 이유'였다. 10초 정도로 해 주어야 편집되지 않고 다 나갈 수 있다는 기자의 말에 10초에 끝낼 말을 생각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해외에 알리고 개인적으로도 보람있는 일이기에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뭐, 이런 요점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음.. 약 4번의 NG도 내고. ^^;

뉴스 촬영도 하고 각종 체크 사항도 점검하고 있는데, PAS 발대식 시간이 다 되었다. 5시가 약간 넘어서 국제선 2청사 3층 로비에서 우리 필리핀 아클란 팀 말고도 다른 두 팀이 더 모여서 발대식으로, PAS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기부금을내 주신 기업체 대표님들의 인사, 사진 촬영을 했다. 발대식을 마치고, 티켓팅을시작했다. 그 동안 꾸린 짐이 상자만 약 10여개, 개인이 핸드 캐리 하는 짐을 제외하고도 카고로 넣을 짐이 무려 33개나 되었다.(다른 팀은 40여개였지만.. ^^;) 남자들(우리 팀은 남자가 너무 적다. 20명중 남 5명, 여 15명)이 짐을 날라서 카고로 집어 넣고 여자 팀원들은 빨리 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쉽게 짐 처리를 할 수 있었다.

짐을 다 넣고 나서 여행사 직원의 설명을 듣고 공항 안쪽으로 들어갔다. 노트북을 들고 가서 세관신고를 하고, 출국 심사도 받고 들어갔다. 면세점이 있기는 한데 뭐 별루 사고 싶은 물건도 없고, 돈도 없고 해서 집에 전화나 한 통 걸었다. 잘 다녀오겠다고 한 통화 하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다가 시각에 맞추어 비행기에 들어갔다. 8시 5분 출발 비행기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출발이 늦어졌다.

피곤해서 잠깐 졸아서 30여분이 지났는데도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국내 비행사의 항공편이 아닌 필리핀 항공이라서 안내 방송도 영어로 나오고, 기내가 엔진소리로 시끄러워서 가뜩이나 알아듣기 힘든 영어 안내 방송을 알아 듣기 힘들어서 늦게 출발하는 이유는 몰랐지만, 아무튼 예정된 출발 시각보다 약 50분이나 지체된 8시 55분 경에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고도에 다다르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내식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긴 했지만, 저녁 먹기가 시간이 어정쩡 해서 안 먹고 있어서 너무나 배가 고팠기 때문에 하나도 남김없이 닭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마닐라까지는 세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지금 시각이 한국 시각으로 10시 55분이다.

이륙한지 약 두 시간이 지났다. 언제 마닐라에 도착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비행기가 매우 시끄럽다. 스튜디어스의 지나가는 말로는 비행기가 오래되어서 그렇다는데, 음악을 듣고 있는데도 엔진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움... 빨리 내리고 싶당. 그래도 노트북을 가지고 계속 노니까 그리 지겹지는 않다. 작년에는 중국에 가는 한 시간 30분도 무지 길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너무 시끄럽당. 오래 있으면 난청이 생길 것 같이.. ^^

드디어 마닐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세 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출발 전의 지체 때문인지 조금은 지루했을 시간. 노트북 덕분에 쉽게 올 수 있었는데... 착륙하고 나서도 공항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약 3, 40분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그 동안 깜빡 잠을 잤다.

필리핀은 한국보다 한 시간 느리다. 8시 55분 경에 출발한 비행기는 약 세 시간을 날아서 필리핀에 한국 시간으로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고, 다시 기다리는 시간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 넘어서야 필리핀 땅을 직접 발로 밟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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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27일 화요일

이제 출국이 바로 내일이다. 오늘은 혁준이형 집에 모여서 각종 물품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암사역에 모여 혁준이형 집으로 갔다. 혁준이형 집에 들어가니 각종 용품이 엄청나게 있었다. 이런 짐들을 다 당번을 정해서 나누어 집에 가져갔다가 다시 내일 공항에서 모이기로 했다. 나는 늦게 오는 경민이를 대신해서 의약품을 맏기로 했다. 의약품은 울 학교에서 받은 것과 팀 비용으로 산 것이 있었지만 그리 많지 않아서, 가져간 가방과 쇼핑백 하나에 다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짐을 다 나누고 갈 사람들은 각자 집에 돌아갔다. 남은 사람 중에서 나, 용래형, 명섭이, 성희, 그리고 미진 누가 이렇게 다섯 명은 동대문에 쇼핑을 가기로 했고, 남은 세 명은 할인점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더 사기로 했다.

동대문에 도착해서 나랑, 성희, 명섭이가 같이 돌아다니고, 용래형과 미진누나가 같이 돌아다니다가 맥주를 한 잔 하기로 하고 두타 10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맥주를 시키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늦게 이 팀에 합류한 나로서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도 조금씩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일찍 일어나야 했다는것이 아쉬웠다.

집에 돌아오니 9시 30분 쯤 되었다. 내일은 정말 출국이다. 대강의 짐을 정리하고 TV를 보다가 자정이 조금 넘어 잠들었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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