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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Med Student

족보(族譜)를 차고 - 성영제

족보(族譜)를 차고 - 성영제

내 손에 족보(族譜)를 잡은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본 일 없는 새로 뽑은 족보
벗은 그 무서운 족보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족보가 벗도 해할지 모른다고 위협하고

족보 안 잡고 살아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복보는 봐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의대에 왔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늬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짐승 바야흐로 내 족보를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짖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족보를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성적표를 건지기 위하여

교수님께서 내 주신 숙제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예전 족보를 꺼내보았다. 본과 1학년 2학기 말에 배운 소화기학, 소화기내과와 관련 외과, 소아과, 병리과, 영상의학 등등이 모두 총망라되어있던 과목으로, 임상과목의 쓰디 쓴 맛을 내게 첨 안겨준 그런 과목이었다. 아무튼, 간담췌를 펴서 넘기는 동안 못 보았던 시 한 구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읽어보니 유명한 시를 패러디한 듯 한데, 찾아보니까 김영랑 시인의 '독(毒)을 차고'라는 시를 패러디한 것이었다. :) 의대생활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로써, 화자는 벗과 대화를 나누며 벗의 충고를 듣지만 그래도 족보를 차고서라도 겨우겨우 시험을 통과해 나아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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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블루시트러스 2007.11.21 23:25

    저도 이래저래 놀다 공부하려니 많이 힙듭니다. 자유님은 클리앙에서도 뵌 적이 있고..학번은 꽤 높으신거 같은데 이제 PK라니 힘드시겠어요..저도 어린애들이랑 같이 다닐라니까 힘들어서 정신이 없는데...

    • BlogIcon 자유 2007.11.23 19:57 신고

      아, 클리앙에서 저 보셨나요? 워낙에 공부 안 하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해서... :)
      20세기 학번인데 아직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워낙에 공부를 안 좋아해서 말이지요. 늦게 하니 더 힘드네요. :)

  • BlogIcon moonzoos 2007.11.22 20:59

    지긋지긋한 족보꾸러미들을 바라보면서 인생은 족보대로 살지 말자..인생의 reference는 족보보단 다른데서 찾자...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이 바닥은 끝까지 족보라는..ㅠ.ㅠ.....
    힘드시죠??...내년까지만 참으시면 더 힘드니까 힘내세요..^^;;;
    토요일부터 휴간데..멀하고 놀아야 재밌게 놀았다고 소문이 날지ㅎㅎㅎ...

    • BlogIcon 자유 2007.11.23 20:01 신고

      맞아요. 맞아요. 그래도, 그 초심 잃지 마세요. 저는 뭐, 그냥 족보라도 보자.. 이런거죠. :D

      휴가 1주일이죠? 정말 소문날 정도로 멋지게 놀다 오셔야 하는데 말이에요. 내일이 휴가 시작이니 얼른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