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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

자유/Med Student | 2006. 9. 16. 21:44 | 자유
후배의 영안실에 다녀왔다. 예상했던 것처럼 침통한 분위기였다. 병원 영안실로 들어서는데, 가족들의 오열이 들렸다. 연세 많이 드신 어르신들께서 건강하게 계시다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다들 슬퍼하게 되는데, 젊은 녀석이 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고 자살을 했으니...

나와 같이 수업 듣는 03학번 아이들도 꽤 와 있었고, 그 녀석이랑 같은 학번인 00학번들... 인턴 도느라 정신 없을텐데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01이랑 02도 있고... 상주는 녀석의 형이었는데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절 하고 인사 나누고 돌아서는데, 그 녀석이 미워지는거 있지. 아버지와 형을 남겨놓고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버리다니 말이다.

조금 있다보니 우리 학번 두어명이 왔다. 대부분은 어제 밤 소식을 듣고 바로 다녀간 모양이었다. 재성이형이랑 경렬이랑 왔는데, 그 녀석과 함께 기숙사 방을 꽤 오래 썼던 재성이형은 아주 많이 힘들어보였다. 지난 주말 99학번 한 녀석의 결혼식에도 같이 가서 잘 놀고 그랬다는데... 경렬이랑은 며칠 전 몸 보신 한다고 멍멍탕도 같이 먹으러 가서 잘 먹고 왔다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살이라는 거,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고 아주 가까이 있었다. 그 동안 못 나누던 이야기를 이런 자리를 핑계삼아 꺼내놓기 시작했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들에 놀라면서도 정말이지 가족들에게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험도 있고 해서 빈소 지키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일어났는데, 이럴수가. 별로 좋지도 않은 내 구두가 없어져 버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내 구두. 4년 전인가 랜드로버에서 겨우겨우 발에 맞추어 산 캐쥬얼 스타일의 구두인데, 비싸지도 않은 그 구두를 누가 가졌단 말인가. 차근차근 신발들 사이를 찾아보니 내 것과 비슷한, 그러나 훨씬 더 낡은 구두가 놓여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것인 줄 알고 내 구두를 신고 간 모양이다. 처음에는 구두가 아까운 생각도 들었는데,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녀석에게 해 준 것도 없는 선배지만, 가는 길에 신고 갈 구두 한 켤레 줬다고 말이다. 이왕 주려면 더 좋은 걸 주고 싶은데, 4년이나 신은 닳을 대로 닳은 헌 구두를 신고가게 되어버렸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빨리 가라든.

남의 구두를 신고 나오면서, 재성이형과 경렬이에게 인사했다. 자주 보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나쁜 자리에서 말고 좋은 자리에서 자주 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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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PETER 2006.09.17 00:50

    믿어지지 않네요. 작년에 저희 학교 후배 한분도 불의의 사고로 저세상으로 갔었었는데...
    참 모진 사람이에요 안타까움을 담아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자유 2006.09.17 13:01

      주위 사람들도 모두 엄청 놀란 상태입니다. 멀쩡한 줄로만 알았는데, 갑자기 이런 큰 일을 저질러 버리다니...

  2. Eun 2006.09.17 01:37

    정말..말두 안돼요..ㅜㅡ

  3. BlogIcon ripli.. 2006.09.17 12:29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는 자유형의 선물을 받고 꼭 좋은 곳으로 갔을겁니다.
    자유형도 힘내세요!!

    • BlogIcon 자유 2006.09.17 13:04

      응.. 오늘이 발인이라는데 그 헌 구두라도 잘 신고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힘 내야지! :)

  4. BlogIcon luv4™ 2006.09.17 14:32

    어떤 절망과 힘겨움이 후배님을 죽음의 길로 몰아갔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평안하길 빕니다. 남은 가족분들께서도 슬픔과 상실감에서 하루빨리 헤어나시길 바라구요.

    • BlogIcon 자유 2006.09.17 23:37

      그러게 말이에요. 아무에게도 말 못 했던 무엇이 그 녀석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이제는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5. 또다른 일권 2006.09.17 17:42

    이유를 막론하고, 자살은 자신이 주변사람에게 줄수있는 가장 큰 고통이겠죠.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자유 2006.09.17 23:42

      망연자실한 아버님과 그 녀석의 형님이 떠오르네요. 정말 그러지 않았어야 했는데...

  6. BlogIcon ENTClic 2006.09.18 23:15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의국 후배가 자살을 했습니다.
    제 밑에서 같이 일하던 녀석인데..chief때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오래된 일이지만 갑자기 그놈이 생각나는군요.

    • BlogIcon 자유 2006.09.19 11:43

      이번 사건을 통해 주위에 꽤 많은 자살 사고가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나저나, 치프의 부담이 막중한가보네요. 하기도 힘들겠지만, 하게 된다손 치더라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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