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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Med Student

마지막 선물

후배의 영안실에 다녀왔다. 예상했던 것처럼 침통한 분위기였다. 병원 영안실로 들어서는데, 가족들의 오열이 들렸다. 연세 많이 드신 어르신들께서 건강하게 계시다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다들 슬퍼하게 되는데, 젊은 녀석이 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고 자살을 했으니...

나와 같이 수업 듣는 03학번 아이들도 꽤 와 있었고, 그 녀석이랑 같은 학번인 00학번들... 인턴 도느라 정신 없을텐데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01이랑 02도 있고... 상주는 녀석의 형이었는데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절 하고 인사 나누고 돌아서는데, 그 녀석이 미워지는거 있지. 아버지와 형을 남겨놓고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버리다니 말이다.

조금 있다보니 우리 학번 두어명이 왔다. 대부분은 어제 밤 소식을 듣고 바로 다녀간 모양이었다. 재성이형이랑 경렬이랑 왔는데, 그 녀석과 함께 기숙사 방을 꽤 오래 썼던 재성이형은 아주 많이 힘들어보였다. 지난 주말 99학번 한 녀석의 결혼식에도 같이 가서 잘 놀고 그랬다는데... 경렬이랑은 며칠 전 몸 보신 한다고 멍멍탕도 같이 먹으러 가서 잘 먹고 왔다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살이라는 거,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고 아주 가까이 있었다. 그 동안 못 나누던 이야기를 이런 자리를 핑계삼아 꺼내놓기 시작했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들에 놀라면서도 정말이지 가족들에게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험도 있고 해서 빈소 지키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일어났는데, 이럴수가. 별로 좋지도 않은 내 구두가 없어져 버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내 구두. 4년 전인가 랜드로버에서 겨우겨우 발에 맞추어 산 캐쥬얼 스타일의 구두인데, 비싸지도 않은 그 구두를 누가 가졌단 말인가. 차근차근 신발들 사이를 찾아보니 내 것과 비슷한, 그러나 훨씬 더 낡은 구두가 놓여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것인 줄 알고 내 구두를 신고 간 모양이다. 처음에는 구두가 아까운 생각도 들었는데,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녀석에게 해 준 것도 없는 선배지만, 가는 길에 신고 갈 구두 한 켤레 줬다고 말이다. 이왕 주려면 더 좋은 걸 주고 싶은데, 4년이나 신은 닳을 대로 닳은 헌 구두를 신고가게 되어버렸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빨리 가라든.

남의 구두를 신고 나오면서, 재성이형과 경렬이에게 인사했다. 자주 보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나쁜 자리에서 말고 좋은 자리에서 자주 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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