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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잡담

스위스전 분패, 그리고 월드컵 잡담

시험이 코 앞이었지만 경기를 안 볼 수는 없었다. 방돌이들 모두 안 보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다가 경기 시각이 되니 슬그머니 켜지는 TV. '넌 이미 보고 있다!!' 사실, 조별 예선 세 경기 중 이번 경기가 가장 만족스러운 경기내용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초반에 잘 안 풀리고, 선제골을 내주기는 했었지만, 토고, 프랑스와 할 때랑은 다른 모습으로 좀더 만들어가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이 계속되고, 급기야 부심의 오프사이드 판정을 주심이 뒤집어 엎으면서 경기는 더 이상 경기가 아니었다. 만약에 내가 그 자리에서 뛰고 있었다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정말 기립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부심이 분명 오프사이드라고 기를 들었는데...

부심이 분명 오프사이드라고 기를 들었는데...


1. 오심과 편파 판정
클리앙 회원이신 배리님의 관전평을 읽어보면 '오심은 있을 수 있으나, 편파 판정은 오심과 다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나도 동의한다. 심판도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실수를 최대한 막아보고자 주심 이외에도 두 명의 선심이 경기장에서 뛰고, 한 명의 부심이 경기장 밖에 있는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한 명이 더 추가되어 총 다섯 명의 심판이 한 경기에 참여하게 된다. 이게 다 공정한 판정을 내리자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스위스 선수들의 명백한 핸드볼 파울이나 심한 차징 파울은 지적하지 않으면서, 우리 선수들의 조그만한 부딛힘에는 여지없이 휘슬을 불거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심지어 경기 막판에는 우리의 공격이 활로를 찾는 듯 하면 어드밴티지를 적용하지 않고 스위스 선수에게 파울을 선언하여 맥을 끊는 행동까지 보여줬다. 오프사이드 논란도, 부심이 분명 오프사이드라고 기를 들었는데, 나중에 주심이 그걸 무시하고 인플레이 상태라고 하여 골을 인정했다. 물론, 부심은 주심을 돕는 역할만 할 뿐이고 최종 판정은 주심이 하는 것이라지만, 명백하게 오프사이드라고 기 들었다가 골 들어가고 나서 슬그머니 내린 부심은 또 뭐 하는건지. 주심과 부심, 쿵짝이 아주 잘 맞는다. 우리 선수들에게 한가지 아쉬운 점은,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는 자의로 판단하고 멈추지 말아야 하는 점을 자꾸 까먹는다는 것이다. 물론, 선심 기가 올라가고 그 판정이 무시되는 경우가 흔치 않긴 하지만, 이번 말고도 그런 예는 아주 많다. 휘슬이 울릴때 까지는 전력으로 달려야 한다.

피파 회장에게 잘 보이면 얼마나 좋을런지 잘 모르겠지만, 이건 좀 아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이 경기 뿐 아니라 여러 경기에서 심판의 오심 시비가 많이 있었다. 왜 그러는거니?? 어디든 힘과 돈이 작용하겠지만, 그래도 전 지구인의 축제에는 좀 덜해야 하지 않을까?


잘 했다, 조재진

잘 했다, 조재진


2. 그래도 열심히 해 준 우리 선수들
2002년 4강 신화에 비해 2006년 16강 진출도 못한 초라한 성적표 때문에 말이 많은가보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2002년엔 월드컵 본선 1승 한 번 해 보자는게 목표였다. 그래서 K리그가 망하든 말든 국가대표 소집해서 계속 합숙 시키고, 잘 하는 나라들이랑 평가전 계속하는 등 축구협회 예산을 거의 다 써가면서 점점 팀웍을 다져나갔다. 그랬다가 소위 대박 터진거다. 물론 홈 잇점도 작용했겠지만, 들인 노력과 예상치 못한 행운으로 인해 난생처음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간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독도 자주 바뀌고, 축구협회도 2002년처럼 올인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성과를 올린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우리가 언제 원정 월드컵에서 승점 4점을 올려본 적이 있었나? 프랑스나 스위스 등 유럽팀을 만나 쫄지 않고 대등한 경기를 해 본적이 있었나? 물론, 아쉽고 모자란 부분도 많지만, 현 상황에서는 최선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스물 세 명의 대표선수들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 써주는 대표팀 관계자 여러분들(주무, 총무, 비디오 분석관, 물리치료사 등등 음지에서 일 하시는 분들이 무척 많이 계시다.) 모두 수고 하셨지만, 난 한 명을 꼽으라면 조재진을 꼽고 싶다. 욕 많이 먹긴 하지만 이동국만한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고, 천운을 갖지 못했던 이동국이 부상으로 빠지게 되자 그 자리를 조재진이 이어 받았다. 토고전에서는 안정환이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자리는 안정환보다 조재진이 제격이다. 특히 프랑스 전에서는 우리가 미드필더에서부터 밀리는 나머지 거의 혼자 최전방에 나가서 고공패스를 처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보였다. 그러다, 박지성의 천금 같은 골을 멋지게 헤딩으로 연결해 주지 않았나. 오늘 경기에서도 최전선에 서서 끝까지 헤딩 경합을 벌이고 우리 편에게 공을 떨어뜨려주려 하는 모습이 아주 좋아보였다. 이동국에 비해 조재진이 골을 못 넣는다고 하지만, 자기가 넣으면 놓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면 열심히 동료에게 공 배급을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천수, 최선을 다했다.

이천수, 최선을 다했다.


축구 선수 중 안티팬이 가장 많은 선수가 아마 이천수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이천수만큼 열심히 뛴 선수를 찾으라면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토고 전 동점 프리킥을 뽑아냈고, 대부분의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하는 등 우리 대표팀의 전문 키커로 거듭나고 있다. 오늘은 투지를 불사른 몸놀림으로 여기저기 전광석화처럼 뛰어다녔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 놈의 '입'이 문제이긴 한데, 언론 보도가 100% 사실도 아니고 부풀여지는 경우가 워낙 많다보니 그대로 믿으면 안되겠다. 오늘처럼 정말 말도 안 되게 지게 되어서 그랬는지,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이천수는 그라운드에 엎드려 울음을 터트렸다. 괜찮다. 아직 젊잖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지금의 한을 풀어라.


최진철이 없었다면?

최진철이 없었다면?


우리 대표팀의 맞형인 최진철, 그가 없었다면 이번 월드컵 성적은 어떻게 되었을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경기를 펼쳤을 것이다. 물론 그의 나이에 따른 체력 저하 등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를 그 자리에서 몰아낼 수 있는 실력과 배짱을 가진 젊은 선수들이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표팀 최고령인 최진철을 계속해서 주전으로 풀타임 출장을 시키겠냐구. 이호, 김상식 등은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거의 X맨 취급 받고 있다. 박주영 역시 왜 출장시켰는지 모르겠다. 아직 재목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나무다. 게다가 힘이 넘치는 유럽 선수들과 부딛히면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지고, 박주영 특유의 유연한 몸놀림을 보여주지도 못 했다. 이러다보니, 아드보카트 감독의 선수 선발 능력에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이호는 결정적인 실수를 너무 많이 한다. 이들 말고도 전반적으로 수비진의 구성이 너무 엉성했다. 최진철처럼 눈두덩이 찢어져 피가 나더라도 붕대 감고 나와 뛸 정신도 없이, 우리가 수세인데도 설렁설렁 뛰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물론 위에서 언급했듯, 이번에는 합숙/전지훈련기간이 짧아 유기적인 수비진 구축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충분히 이해한다.) 2002년의 그 듬직한 수비진이 다시 나와준다면 2010년에 다시 일 낼 수 있지 않을까?


모두 열심히 했다.

모두 열심히 했다.


3. 모두 열심히 했다.
어느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겠는가. 모두 죽을 힘을 다해 뛰었을 것이다. 온 나라가 들썩이고, 시민들은 밤잠도 안 자고 거리로 몰려나와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응원하는데, 어떻게 몸사리며 뛰었겠는가.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이 있었다. 이번 월드컵으로 끝내지 말고 이번에 드러난 여러 문제점들을 착실히 고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축구 시스템, 나아가서는 스포츠, 아니 생활체육 시스템도 더 좋게 변해야겠고, 국가대표 경기에만 열광하기 보다는 그의 밑거름이 되는 국내 리그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야겠다. 말이 나온 김에 가까운 성남 일화를 마음 먹고 응원해 볼까?
선수들도, 대표팀 관계자들도 모두 열심히 했고, 밤잠 안 자고 응원한 우리 국민들도 수고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기분 좋게 응원하고 곱게 집에 들어가자. 월드컵에서 1승 했다고 타인의 사유재산을 파괴하거나, 희롱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에구... 잘 하고도 석연치 못하게 져서 주절이 주절이 말이 길어졌다. 우리 대표팀의 경기는 끝났지만, 아직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인생도.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야지.

이제 마음 놓고 시험 공부를 할 수 있겠군. ;;

모든 사진은 2006 FIFA World Cup - Tournament - Photo Zon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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