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비인후과 송년회의 여파로 오늘 병동 담당과 동시에 저녁부터는 밤새 당직인데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그 와중에 잠깐 내 눈을 끄는 글이 있어서 읽어보았더니, 오늘의 몸상태 만큼이나 마음도 무겁게 만드는 글이었다. 클리앙에 올라온 글로, 쌍둥이 출산과정에서 겪은 문제점에 대한 분노를 담아내고 있다. (원문 보기)
이제 애송이 의사인 내가 봐도 언급된 병원의 잘못된 대응이 있다. 특히, 의료법에 정해진 것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못이 클 것이다. 게다가, 정황 상 충분한 설명을 다 하지 못 했었나보다. 이 점은 정말 아쉽다.
댓글도 엄청나게 달리고 있다. 의료인임을 밝힌 댓글은 나랑 비슷하게 병원의 잘못도 있지만, 시스템 상 어찌할 수 없는 점도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비의료인일 대부분의 회원들은, 생명을 다루면서 돈 이야기 하는 의사들이 잘못이다라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여기서 아쉬운 것이, 왜 의사는 돈 이야기 하면 안 될까? 그리고, 그 돈 내는 건 의사들이 정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에서 정하는 것인데 왜 욕은 의사들이 먹을까? 허준이니 히포크라테스니 다 좋다. 나도 그런 의사가 되면 좋겠다. 하지만, 저들이 그리고 추앙 받는 이유가 뭘까?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이기에 그렇다. 모든 의사가, 모든 의료인이 허준이나 히포크라테스가 될 순 없다. 모든 정치지도자들이 간디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공산주의라면 몰라도 자본주의에서 서비스(라는 말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를 제공 받는데 그에 대한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고, 고귀한 직업이니 밤잠 못 자고 고생해도 돈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걸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라고 생각한다.
링크된 글에서 내가 봐도 명백한 잘못이 있다. 하지만, 한 회원의 댓글처럼, 의사가 잘못한 것에 대해 의사에게 욕을 해야지, 그 외의 것들까지도 모두 다 책임지라고 한다면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의사 한 명 한 명의 마음가짐부터 시작해서, 병원 시스템, 건강보험 시스템, 그리고 2MB 메모리 가진 분 및 그 분 도와주시는 분들의 마음까지 말이다.
의료가 공공재의 성격을 띄기에 무조건 자본주의에 맡기는 것은 나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무언가 다 해 줄 듯 사회주의 건강보험이라고 광고 해 놓고, 실제로는 거의 자본주의 건강보험에 가까운 이런 건 아니다. 무언가 큰 변화가 필요한데, 그 변화를 이끌어낼 난세의 영웅이 아직 없나보다.
아는 것도 없고, 글 쓰는 실력도 없고, 가슴은 답답한데, 표현할 길은 없고, 콜은 쌓였고, 몸은 안 좋은데 오늘 당직이고... 사면초가가 이런 사면초가가 없을 지경이다. 어떻게 해야 의사와 환자는 친해질 수 있는걸까? 오늘도 당직인 애송이 의사의 답 없는 고민은 계속된다.
p.s. 내가 만나본,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에서 온 외국인 환자들에게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 대해 물으면 다들 환상적이라고 한다. 미국 사람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매우 '싸게' 받을 수 있어서, 영국 사람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매우 '빠르게' 받을 수 있어서...
또 p.s.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 (Sicko)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가 모두 사실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 번 보면 좋을 듯.
마지막 p.s. 2MB 메모리의 그 분이 그토록 강조하시는 소통,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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