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정말 역동적이었다! 구미 응급실을 돌고 있는 다섯 명의 인턴 중 한 명이 신종플루, Influenza A H1N1 확진검사 결과 양성이 나와 일을 며칠 쉬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그 결과 남은 네 명 모두 24시간 근무를 한 번씩 해야만 했다. 그것도 내가 낮근무(아침 8시 ~ 저녁 8시) 시작하러 가서 들었다. 24시간 근무 해야 한다는 걸.. :) 그러던 와중에 내가 지원했던 과 2년차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과장님 어머니께서 투병 중 돌아가셨다고 말이다. 지원도 해 두었겠다, 이번 기회에 교수님들께 인사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고마운 귀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인사 드릴 기회가 없었던 차에 잘 되었지만, 문제라면 난 24시간 근무 중이었고, 일찍 마쳐봐야 저녁 8시, 서울 가는 마지막 차는 버스가 8시 반, 기차는 9시 반이라는 것.
내 뒤를 이어 24시간 근무할 인턴에게 30분만 빨리 와 달라고 부탁하고, 저녁 7시 반에 인계 시작, 7시 45분에 응급실을 나와 숙소로 올라가 부리나케 샤워를 하고 옷 갈아입고 병원을 나선 시각이 8시 5분. 택시 바로 타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8시 15분경, 서울 가는 막차의 표를 사고 간단히 요기를 한 후 8시 30분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나가자마자 정신을 잃은 나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었는지 어쨌는지도 모른채 서울강남터미널에서 눈을 떴다. 그 시각이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우산은 없고, 차편 알아볼 시간도 없었기에 바로 택시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비 오는 밤의 서울 거리는 한적해서 11시 반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급하게 간 터라 검은 정장도 아니고, 넥타이도 못 매었지만, 그래도 옷 매무새를 다시 한 번 가다듬고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과장님의 어머니께서 투병 중이신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는데...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괜히 슬픈 감정이 앞섰다. 흰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절 두 번 하고, 과장님께 인사 드렸다. 멀리서 근무하느라 바쁠텐데 와 주어 고맙다는 말씀에 24시간 응급실 근무와 3시간 이동의 피로가 가시는 듯 했다.
쥬니어 스텝 선생님과 3년차 선생님도 와 계셔서, 그 자리에 합류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 나누었다기 보다 거의 일방적으로 듣기만 했다. :) 어디 인턴 나부랭이가 교수님과 치프 선생님의 대화에 끼어들겠는가. 원래는 금방 일어나고 싶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니 눈은 점점 감기고, 표정 관리는 잘 안 되고 그랬다. 그래도, 과장님께서 가족들에게 '내년 우리과 1년차 할 친구야.' 라고 소개해 주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새벽 2시가 다 된 시각, 문상객들도 다 나가고, 과장님께서도 이제 좀 쉬셔야 해서 일어나기로 했다. 교수님께도 인사 드리고, 치프 선생님께도 인사 드리고, 택시를 잡아탔다. 비 오는 서울의 밤거리, 올림픽대로를 택시 타고 달려 우리 색시랑 유진이 자는 얼굴 보고 나도 얼른 잠 들었다. 32시간만에 눕게 된 것.
힘들었지만, 문상과 인사도 하고, 과장님께 나름대로의 인정도 받아 뜻깊은 하루였다. 이보다 더 좋은 건 다음 포스팅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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