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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 이진현

자유/Med Student | 2006. 12. 5. 00:50 | 자유

별 헤는 밤

이진현


내 눈이 지나가는 필족에는
영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필족 속의 별들을 다 줄칠 듯 합니다.

머리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시험날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전날 밤에 시작한 까닭이오,
아직 나의 똥줄이 다 타고있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강조점과
별 하나에 기출과
별 하나에 문족
별 하나에 빈출과
별 하나에 왕족
별 하나에 무재시, 무재시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예과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Brian, Calla, Gwen 이런 이국(異國) 선생님들의 이름과 벌써 아이 아버지가 된 동수의 이름과 휴학한 나의 동기들 이름과, 싼달, 개, 당낭, 짐승, 찐따, 로빈스, 네터, 해리슨, 이런 의사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에이뿔이 아스라이 벌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인천광역시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필족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화이트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마시는 술은
부끄러운 성적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성적표 위에도
자랑처럼 에이뿔이 무성할 게외다.



오늘 받은 족보들 중에 어느 한 족보 후기에 쓰여있는 시를 황급히 옮겨적어봤다. 지난 번에는 노래를 패러디하더니, 이번엔 대가인 윤동주 시인의 유명한 시 '별 헤는 밤'을 멋지게 패러디해 냈다. 참고로 위 시에 나와있는 이름, 별명, 지명은 모두 실제와 같으니 참고하시고... 아무튼, 내 그 동안 시를 이렇게 감동 받으며 읽어본 적이 없었다. (ㅠㅠ) 읽는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파는 멋진 글귀들로 가득했다. 쌓여가는 족보의 무서운 침강률 앞에 좌절하면서도, 들춰보는 족보마다 가득한 영어와 별표. Linology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밑줄이나 별표 등의 강조점이 없으면 단 한 페이지도 읽을 수 없는 우리의 머리. 한 동안 문학과 멀리 하고 살아온 메마른 삶이 이 녀석의 시 한 편으로 촉촉한 단비를 맞은 것과도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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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김재한 2006.12.05 09:32

    자유님 무재시가 무엇인가요? ^^

    • BlogIcon 자유 2006.12.05 17:28

      '재시'에 대한 키워드도 만들어야겠군요. (ㅠㅠ)
      기말고사 후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다시 시험을 치게 하는 제도입니다. 다시 재를 사용해서 재시라고 부르고, 더 보는 경우도 있는데, 삼시, 사시.. 이렇게 부르죠.

      흑흑... (ㅠㅠ)

  2. BlogIcon 루돌프 2006.12.05 10:31

    아직 나의 똥줄이 다 타고있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부분이 심금을 울리는군요..ㅠㅠ

    • BlogIcon 자유 2006.12.05 17:28

      맞습니다. 정말 마음을 후벼판다니까요.
      오늘 강의실에 갔더니 많은 아이들이 이 시에 감동받아있더군요. :)

  3. 선주 2006.12.05 21:37

    제가 이 답글을 달고 있는 까닭은 아직 제 똥줄도 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 좀.. 타라.. 타... 공부해야한단 말입니다.

    • BlogIcon 자유 2006.12.05 21:58

      제가 선주님의 댓글에 겨우 20분 지나 댓글을 달고 있는 까닭은 아직 제 똥줄도 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ToT)/

  4. 이진현 2006.12.10 00:27

    이것마저 올리시다뇨..;;;ㅠ.ㅠ ㅋ

    • BlogIcon 자유 2006.12.10 01:24

      진현이의 역작들을 그냥 잊혀지게 할 수 없어서 말이야. :)
      반응이 뜨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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