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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잡담

귀걸이, Earring

내가 귀걸이를 하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1999년 겨울이었나보다. 현재 재활의학과 전공의를 하고 계시는 이 모 군과 함께, 학교 신입생 원서등록 자원봉사를 하다가 어떻게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지 아무튼 둘이서 귀걸이를 하자고 나서게 되었다. 분당에서 이대까지 가는 수고를 한 끝에 어느 악세사리 전문점에서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옛 말씀을 거스르게 되었다. 12월 24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행히 그 때 부모님께서는 며칠 여행 가신 중이서 집에는 잘 들어갈 수 있었다.

며칠 지나 부모님께서 집에 돌아오시고는 어머니께 먼저 들켰다. 어머니께서는 요즘 다 그렇다며 이해를 해 주셨는데, 문제는 아버지셨다. 완고하신 아버지께서는 남자 녀석이 귀를 뚫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나 나름대로 오기를 부려 집에서는 작은 귀걸이를 해서 최대한 눈에 안 띄게 하고, 밖에 나갈 땐 조금 더 큰 귀걸이를 하고 그랬다.

귀걸이를 하게 된 것은 평범해 보이는 내 외모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였다. 나름대로 부모님 속 많이 썩여드리며 자라오고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큰 문제 일으키지 않으며 살아온 범생이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걸 바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일종의 개성 표현을 원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귀걸이를 하고 나니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남자들의 귀걸이가 어찌나 눈에 많이 들어오는지, 정말이지 아무나 다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만 같았다.

병역으로 회사 다닐 때도 퇴근 후 하고 다니는 등 나름대로 꽤 열심히 귀걸이를 하고 다녔는데, 이번에 2학년에 진급하고 병원으로 수업 들으러 다니면서 귀걸이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남학생이 귀걸이 하고 다니는 걸 임상 교수님들께서 곱지 않게 보실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만나는 전공의 친구들이 아직도 귀걸이 하고 다니냐는 농 섞인 핀잔을 가끔 주기도 해서 그렇기도 하고 말이다. 더 큰 이유라면... 민들레 아가씨로부터 선물 받은 그 귀걸이를 어쩌다 잃어버렸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