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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본 것

냉정과 열정 사이 (冷靜と情熱のあいだ, Between Calm and Passion)



민들레 아가씨를 사귀기 시작한게 2002년 봄. 초등학교 동창에게 미리 들어두었던 책이 있어 그 책, 아니 책들을 구입하여 민들레 아가씨와 나누어 읽었다. 그 책이 바로 '냉정과 열정사이' 일본의 유명 남녀 작가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만들어나간 독특한 형식의 책으로, 남자 작가는 Blu를, 여자 작가는 Rosso라는 부제를 가진 책을 써서, 각각 남자 주인공의 시점과 여자 주인공의 시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작가들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알지도 못한채 책의 이야기 속에 폭 빠져서 읽었었고, 후에 동명의 영화도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크린샷을 찾아보니 내가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남녀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라 보지 않으려고 했었지만, 나중에 영화를 보았을 때에는 주인공들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경이 너무나 좋았다.(유럽배낭여행을 하면서 이탈리아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많이 가지게 되었음에도 말이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 주인공으로 열연한 두 배우가 이름만 대면 다 알만큼 유명한 배우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참 이 책에 대해 생각치 못하다가, 이번 학기 개강을 하며 학교 기숙사에 다시 들어오면서 우연치 않게 마주치게 되었다. 지난 학기엔 기숙사 4층을 주로 남자가, 5층을 주로 여자가 사용했는데, 이번 학기에는 뒤바뀌어서 여자가 쓰던 방을 남자가, 남자가 쓰던 방을 여자가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난 열공의 의지를 불태우며 쪽방에 들어갔는데... 주인을 잃은 '냉정과 열정사이 Rosso'가 책장 한 켠을 홀로 지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3년 전, 민들레 아가씨와 한 권씩 나누어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추억이 떠올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학기 초에 틈틈히 책장을 넘기다보니 오늘 한 권을 다 읽고야 말았다.

아오이와 쥰세이, 그리고 마빈.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어린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닌데, 괜한 소설책 한 권에 마음이 싱숭생숭해 졌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본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 영화 속 그림과도 같은 장면들, 영화보다는 책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두 주인공의 서로를 향한 마음..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책을 다시 책장에 넣어두고서도, 멍~ 하니 자리에 앉아있다. 이런 걸 핑계로 공부를 손에 안 잡으려고 하는 것인지..

아오이와 쥰세이가 겪은 시행착오 없이, 민들레 아가씨에게 쥰세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