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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잡담

개념을 집에 놓고 나온 꼴불견

오랜만에 할머니댁에 가서 할머니와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같이 자고.. 역시나 할머니께선 새벽 일찍 일어나 못난 손자에게 들려보내실 옥수수를 한 소쿠리 뽑아 오셨다. 고봉으로 담아주시는 머슴밥을 한 그릇 뚝딱하고서 할머니께 인사 드리고 길을 나섰다. 10여분 걸어가서 버스를 한 30분 즈음 기다리다 타고, 버스를 40분 가까이 타고서 기차역에 도착했다. 곧바로 무궁화호 열차가 있었는데 입석만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구입하려니까 다행이 그 사이에 취소된 표가 있어 자리를 하나 잡았다.(대학생 할인이 없어져 정상요금을 다 냈다. 아깝다.. ㅠ.ㅠ)

기차가 들어오고, 당당히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때부터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내 바로 뒤(자리가 객실 맨 끝이어서 뒤에 입석표를 가진 승객이 서 있을만한 공간이 있었다.)에서 한 아가씨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차가 출발한 시각은 9시 33분.

그 아가씨의 통화는 계속되었다. 같이 통화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화의 주제는 상당히 다양했다. 세탁기 이야기를 한참 하더니, 어머니께서 열쇠 넣어둔 바지를 그냥 빨았다가 세탁기 속에서 찾았다는 이야기, 열쇠나 동전 때문에 세탁기 다 고장낸다는 이야기,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선을 보러 나갔다는 이야기, 남자가 괜찮아 보이기는 하는데 자기랑은 별로 맞지 않아보여서 한 번 더 만나봤다가 연락 안 한다는 이야기... 별로 듣고 싶지 않은 개인의 일상사였으나, 내 머리 위에서 바로 통화를 하는 통에 귀를 막지 않고서는 그 통화 내용을 안 들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10시가 넘어서 어느 역에서 탄 승객들이 일행과 같이 앉기 위해 자리를 바꿔달라고 부탁하셔서 그 통화 내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그 아가씨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통화 내용도 별반 급한 내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조곤조곤 조심스럽게 통화하는 것도 아니었다. 30분 내내 벌떡 일어나 전화통화는 객실 밖에서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참을 忍자를 얼마나 많이 썼는지 모른다. 내가 자리를 바꾸어주는 그 순간에도 별 의미없는 통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다른 이의 아기가 빽빽거리며 울면 내게 방해가 된다는 걸 알면서, 내가 객실에서 통화를 하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은 왜 모를까? 급한 용건이거나, 아니면 객실 밖으로 나가기엔 너무 짧은 통화를 조용히 하는 것이라면 이해를 하겠다. 이렇게 공공장소에서의 기본적인 예절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SK Telecom에서 한참 'Speed011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라고 광고를 했었다가, 'SK Telecom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SK Telecom 고객님께서는 때와 장소를 가려주십시오.'라는 광고로 바꾸었다. 정말이지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전화예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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