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과대학들, 지금은 의학전문대학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아무튼 의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학교의 존재 이유는 한 마디로 '일차 진료가 가능한 인재의 양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에서 명확하게 써 놓았거나 누가 이야기 해 준 것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학교 다니며 나름대로 생각해 보니 이런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100이면 99가 일차 진료의로 남지 않고, 수련의/전공의 과정을 통해 전문의로 거듭난다. 이는 전문의라 하면 뭔가 더 잘 알고 대단해 보인다 생각하는 인식에도 기인하지만, 이런 사회적 현상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냥 따라가기만 한 의사들의 책임도 한 몫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데 반기를 든 곳이 있다. 이름하여, 제너럴 닥터 General Doctor. 줄여서 제닥. 이름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사회로 뛰어든 1차 진료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많은 언론들에서 제닥을 취재했었고, 블로그 스피어에서도 유명하며, 알고 보니 이 분께선 맥 사용자이신데다, 국내의 한 맥 커뮤니티 운영자이시다. 나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고, 용기가 없어 실천까지는 상상도 못 했으나, 이 분은 상상을 현실로 만드신데다, 맥 사용자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일면식이 없음애도 왜인지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닥이 온라인이나 언론에서만 다루어진 것은 아니다. 정확한 경로를 알 수는 없으나, 힘들게 수련 받고 있는 상당수의 내 친구들이 이미 제닥을 알고 있었다. 그 친구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현 의료 교육 시스템에 맞추어질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의견으로는 좋게 말해 신선한 시도라 할 수 있지만,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나야 아직 졸업하기 전이니 현실을 몰라 뭐라 더 이야기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말이다. 이렇기에 시간이 나면 제닥을 한 번 찾아가서, 실제로 둘러보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가능하다면 그 곳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도 싶었다.
서론이 무척 길었는데... :) 어제 제닥을 다녀왔다. 홍대 앞에서 맛있게 밥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제닥을 찾아가 보았다. 미리 뽑아 간 지도 덕분에 헤매지 않고 잘 찾을 수 있었다. 제닥 건물 앞에 가니 예전에 EBS에서 봤던 다큐멘터리와 똑같은 차가 서 있어서 쉽게 알 수 있었다. :)
제닥의 전경
들어선 시각은 마침 제닥의 점심 시간이었다. 제닥 선생님들은 지인들과 식사 중이었고, 난 조용히 자리 잡고 앉아 더운 날씨를 이겨보고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그러고서 찬찬히 둘러보니, 참으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소품 하나하나 정성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요소요소에 자리 잡고 있는 매킨토시나 애플 제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 오디오와 액자를 겸하고 있는 호빵 iMac에서부터, 저 위에 숨겨놓으셨으나 발견한 Cube와 Airport Basestation 등. 혹시나 볼만한 책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가져간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지만, 제닥 안에는 꽤 많은 책들이 있었고, 대강 훑어보니 제닥 선생님들의 관심분야를 엿볼 수 있었다.
평화로운 제닥의 풍경
내가 좀더 숫기가 있었더라면, 제닥 선생님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었을텐데, 아무리 시도해 보려고 노력해도 발걸음이,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커피 마시며 책만 읽었다. :D 지인들이 계셔서 바빠 보이셨고, 그 와중에도 진료 받으시는 분들이 좀 계셨다는 것으로 변명을 해 볼 수 있겠다. 아무래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가 말 걸면 당황하실 수 있다는 자기 위안도 해 보았고 말이다. :)
아이맥에서 나오는 음악들은 제닥 까페의 분위기와 아주 잘 맞았다.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는데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그 음악에 귀 기울이며 감상하기에 딱 좋은, 소위 Easy Listening 용 음악들이 주옥 같이 나오고 있었다. 나중에 그 리스트를 얻어가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
이렇게 시원하고 아늑하며 무언가 정감이 느껴지는 제닥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나가보아야 할 시각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참 기우인데, 요즘 현금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아 커피값을 카드 결제 해야 했으나, 제닥의 이런 분위기 상 혹시 카드결제기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잠시 했으나, 예쁜 카운터 뒤에 살짝 숨어있는 카드결제기가 있어, 만약의 경우 근처 ATM으로 뛰어갔다올 생각을 했던 내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제닥을 나오면서, 많은 생각과 의문이 들었다. 물론, 내 지식과 경험, 그리고 영특함의 부족으로 그런 생각과 의문에 모두 자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벌써 개원, 혹은 개점 1주년을 지난 제닥의 존재만으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살아 있다는 것을 반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부터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기 마련이니 말이다.
두서 없는 제닥 방문기였으나, 제닥의 건투를 빈다. 아울러, 배가 너무 불러 정선생님표 옵세 치즈케잌을 먹어볼 수 없어 정말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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