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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잡담

끔찍한 사건 - 양재역 교통사고

오랜만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다. 태국배낭여행을 할 때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을 같이 여행했던 사람들인데...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30일에 네팔, 티벳으로 다시 배낭여행을 떠난단다. 아이고, 배 아파~~~ (ㅠ.ㅠ) 게다가 여행기간은 장장 2개월!!!

아무튼, 알바를 일찍 마치고 만나서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영향으로 PDA를 사용하게 된 두 사람. 처음 PDA를 사용하고 PDA를 가지고 가는 여행은 모두 처음인 분들이라 기본적인 PDA 사용법부터 시작해서 여행에서 사용하는 팁과 요령까지 알려드리면서, 여행이야기와 사진이야기를 버무려 몇 시간의 수다를 떨었다.

장소가 강남역이어서, 헤어진 후 언제나 그렇듯 우신버스의 4424번 버스를 기다려서 탔다. 마침, 30일에 여행 떠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나와 같은 방향이라 같이 버스에 올라 못다한 PDA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양재역에 버스가 도착, 사람들이 내리고 다시 올라타고... 버스가 문을 닫고 출발하는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밟고 지나간 느낌이 버스 뒷바퀴에서부터 전해져와 내 다리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무얼 밟은걸까? 느낌이 이상한데..'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기사 아저씨의 'I C'라는 소리와 함께 버스는 멈추었고, 버스 안 승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기사 아저씨가 바로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사태가 심각한 모양이었다. 버스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 입에서 '사람이 누워있어~!' 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져 들려왔다. 버스 안은 더 술렁이고... 몇몇 사람은 '사고야? 그럼 다음 버스 타야 하잖아.' 하면서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로 돌아온 기사 아저씨는 버스 뒷문까지 열었다. 내리고 보니...
오~ 이럴수가... 한 아주머니께서 차디찬 겨울의 아스팔드 바닥 위에 누워계시는데, 오른쪽 다리는 무릎이 완전히 꺾여있었다. 멀찌감치에서 봐도 90도 이상 꺾여있는 것으로 보아 무릎관절이 완전히 파괴된 것 같았다.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나.'라는 생각보다는 '으으~ 징그럽다. 어떻게 하지?'라는 비열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바로 뒤따라 온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려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틈 속에서 짧지만 고민을 했다.

'아주머니를 도와드릴까? 코트라도 벗어 체온 유지하게 도와주고, 엠뷸런스가 올 때까지 손이라도 잡아드려야 할텐데...'
'아니야, 내가 아는게 뭐가 있다고.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전문가들이 달려오길 기다리는 수 밖에...'

결국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뒤따라 온 버스에 올라탔다. 그 버스에 타니 아주머니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고, 뒤늦게 아주머니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지만, 밀려들어오는 승객들을 비집고 나가지 못한다는 것으로 버스에 탄 내 자신을 합리화 시켜버렸다.

1분이나 흘렀을까?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몇몇의 청년들이 쓰러져 있는 아주머니에게 외투를 벗어 덮어주고, 따뜻하게 손도 잡아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교통사고에서 누가 잘못했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 서 있던 버스 안에서는 사고가 발생했던게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사 아저씨가 무리하게 출발을 했던건지, 아주머니께서 버스를 의식하지 못하고 너무 붙어있었던건지...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내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외투를 벗어드리고, 손을 잡아드리는 일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며, 전문가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 아주머니의 상태를 나쁘게 만드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 내게는 더 큰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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