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응급실에서 일 한지가 벌써 4주째다.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새로운 업무에 투입되게 되니 근 한 달 동안 응급실 생활을 해 온 샘이다. 첫 날 응급실에서 첫 환자를 만났을 때 참으로 어리버리 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도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조금은 더 알아서 해보려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해 보이기도 한다. :)
아무튼, 난 원래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잘 마시지도 못 하며(못 먹는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특히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시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이런데다가, 응급실에서 일 하다보니 술 때문에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이 꽤나 많고, 상당수의 경우 제 정신이 아니고 협조가 안 되다보니, 일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약주를 자시려거든 적당히 자시던가, 얼마나 먹었는지 입만 열면 술냄새에 혀는 있는대로 꼬부라져서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고, 술 취해 넘어져 머리에 꽤 큰 상처가 있고 피가 뚝뚝 흐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아프지 않고 멀쩡하니 자기는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이 전형적인 40~50대 주취자 아저씨들의 모습이다. 술 먹고 기억을 못 하니 어떻게 넘어졌는지도 모르고, 넘어질 때 어디 부딪혔는지, 지금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니 어디서부터 무얼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길 가다 넘어지면 다행인데, 꼭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거나, 더 나쁜 건 술 먹고 오토바이 몰고가다 혼자 넘어져서 119 타고 들어온다는거다. 역시 정신이 없으니 사고 경위도 모르고, 외상이 많아도 괜찮다고 우기고, 이학적 검사를 해보려 해도 협조 안 되거나, 몽땅 안 아프다고만 하고... 그나마, 병식이 있는 보호자들이 따라와 어서 검사해 보고 치료하자고 하면 다행이다. 지난 번엔 술 먹고 혼자 오토바이 타고 가다 넘어져서 119 타고 온 50대 아저씨가 머리와 팔/다리의 외상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우기느라 검사를 못 하고 있었다. 팔순의 부모님께서 오셨는데, 병식이 없었다. 우리 아들이 괜찮다니 그냥 가겠다는거다. 큰 형도 마찬가지였고, 다행히 작은 형이 검사 하자고 다그쳐서 겨우 뇌CT 찍고, 필요한 X-ray들도 찍다가 난리 피워서 몇 가지 못 찍었는데... 사진 나온 걸 보니 두개골 골절에다 경미하긴 하지만 뇌출혈 약간, 거기에 갈비뼈 골절까지 있었다. 작은 형 없었으면 어쩔뻔 했는가...
이렇게 술 때문에 사고나서 실려오는 사람들이 응급실 방문 환자의 30%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낮 보다는 밤 근무할 때 보면 더 하고, 주말 저녁과 밤에는 더 하고 말이다. 개인적 기호품이고 적당히 즐기는 것은 나도 뭐라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정신 잃을 때까지 마시고, 넘어지고 사고나서 외상이 있음에도 괜찮다고 집에 가겠다고 우기는 상태가 되도록 마시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술이 웬수인지, 사람이 웬수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길가에 쓰러져있다 실려오는 사람도 꽤 된다.
오늘, 아니 어제 아침 8시에는 아침부터 숙취가 심해 내원한 20대 여자가 있었다. 전날 회식에서 좀 달렸다고 한다. 각종 검사는 모두 거부하고, 술 깨도록 수액과 영양제만 달라는데.... 휴우~ 사람의 겉모습, 그리고 상태에 따라 판단하면 안 되지만, 그게 그렇게 된다면 솔직히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기본적인 문진과 이학적 검사 다 한 후, 술을 줄이던지 금주하라고 이야기 하고 수액과 영양제 주었다.
술! 적당히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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