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틀의 잠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 1993
이번 주 회진을 따라 돌아야 하는 소아과 교수님께서는 내가 소아과 실습을 시작함과 동시에 해외연수를 마치고 돌아오셨다. 교수님 입장에서야 해외연수가 무척 소중한 경험이고 값진 기회였겠지만, 철저하게 실습학생 입장에서 보면 지금 막 해외연수를 마치고 돌아오신 교수님은 좋지 않은 예후인자로 작용하게 된다. 이미 지난 주에 첫 학생들을 받으시고는 월요일 아침부터 넘치는 공부거리와 숙제, 회진 시 질문 세례와 꾸중을 날려주셨다고 무척 걱정을 했었다. 다행히 오늘, 아니 어제 아침과 오후 회진 때 그런 일은 없었다. 나 말고 다른 두 녀석이 워낙에 똑똑해서 그랬을거다. 허나, 30여 페이지짜리 논문을 주시고는 셋이 나누어 내일까지, 아니 오늘까지 준비하여 발표하라고 숙제를 던져주셨고, 교수님 앞으로 입원하는 신환은 셋이 돌아가면서 모두 입원 차트를 쓰라고 숙제를 내 주셨다. 공평하게도 어제 월요일, 교수님 앞으로 입원한 환자는 세 명. -_-;;
영어로 가득 차 있는,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를 논문을 읽으며 발표 준비를 하다보니 속도 답답~~하니 탄산음료가 땡기기도 하고, 이제 겨우 두 장 했는데, 앞으로 남은 열 장을 언제 할런지 걱정도 되고, 발표 자료를 다 만든다 해도 내가 이 내용을 제대로 숙지할리가 만무하므로 발표는 어떻게 하고 교수님의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도 막막하며, 저녁 7시 15분에 끝난 오후 회진 후 배가 고프다며 환자 안 보고 그냥 집에 와버려 오늘 새벽에 병원에 가서 환자 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새벽이라 보호자 깨워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미안해 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면서, 뉴스에서 보니 이번 주 내내 비가 오락가락한다는데, 왠 가을 장마인건지, 빨래는 어떻게 말리라는 것인지 걱정되며, 내일은 또 어떻게 하루를 버텨야 하나 걱정된다.
걱정은 이제 그만하고, 발표 준비부터 해치우자! 오랜만에 새벽에 숙제하려니, 별 잡생각이 다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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