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포스팅을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 고민 많이 했다. 줄기세포 공방이 오고간게 벌써 두 달 정도 되어가니 그 동안 내내 고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아는거 별로 없는 학생 입장이기도 하고,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을만큼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보류해 왔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다니는 커뮤니티에는 조금씩 입장을 밝히기도 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 발표와 오늘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을 보고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두서 없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혹시, 황빠나 황까께서 오셨다면 더 읽지 말고 웹브라우져의 '뒤로' 버튼 눌러서 나가길 바란다. 건전한 토론과 비판은 환영하지만, 막무가내식 옹호와 욕은 듣기 싫다.
난 절대 황빠도, 황까도 아니다.
예전부터 황우석 박사의 언행에 많은 불편함을 느껴왔다. 내가 막연히 가지고 있는 학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그러니까 학자라기보다는 언론 플레이에 능수능란한 정치인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반신 마비가 된 유명가수에게 곧 일어나 춤 출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는 등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고, 궁지에 몰릴 때마다 대한민국을 언급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알량한 전체주의 의식과 잘못된 애국심의 발로를 자극해 왔다. 뭐, 내가 생각하는 학자의 자세와 다르다고 해서 그를 무조건 비난할 수 없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그가 발표했던 연구성과나 논문의 결과가 조작된 것으로 판명이 난 이후에도 그의 행동을 보면 반성이나 사죄의 느낌이 들지 않고, 자신의 잘못보다 타인의 잘못을 의심하게 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서 소위 물타기를 하는 등 너무나도 잘못 행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게 되었다.
2005년 연말을 뜨겁게 달군 것도 모자라 2006년 정초 역시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줄기세포 파문은 황우석 그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설사 그렇다면 그는 정말이지 용서받을 수 없는 희대의 사기꾼일게다. 그렇지 않고, 국내 학계 시스템의 문제나 공동저자로 있는 여러 사람들과의 문제 등등 밝혀내기 쉽지 않은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즉, 황우석 한 사람만 마녀 사냥을 하고 처벌하고 넘어가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모두 잘못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그가 기자회견에서 말 한 것처럼, 그는 문제가 되고 있는 논문의 제 1 저자이고 황우석 연구팀의 책임자로서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 동안 그가 수없이 해온 말바꾸기를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이미 밝혀진 것만 해도 그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러고도 그 자리를 지키려고 오늘 또 대한민국을 언급하고, 새로운 연구결과가 있다고 여론을 호도하려 들다니... 정말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무슨 큰 일만 터지면 하는 기자회견은 그의 사죄를 밝히거나 잘못된 사실을 밝히려 하는 장이기보다는, 그가 더욱 그의 이미지를 굳건히 만들고, 언론은 거기에 장단을 맞추는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사죄한다고 해 놓고,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기자회견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오늘 기자회견의 이야기는 앞부분의 사죄한다는 이야기 빼고 모두 정부나 검찰의 조사에서 이야기 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
앞에서도 밝혔듯 황우석 혼자만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공저자는 물론이고, 그를 최고 과학자로 선정한 정부 쪽 담당부서나 담당자들, 그에게 수없이 러브콜을 보낸 정치인들, 그리고 연구비를 지원한 정부와 사기업들, 모두 엄정한 조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처벌도 받아야 할 것임은 당연하고 말이다.
대표적인 정부의 잘못이야, 이공계의 몰락 위험을 탁상공론하다 만들어낸 최고 과학자라는 제도 하나로 타계하려 한 그 안일한 생각부터 시작해서, 황우석 기념 우표까지 찍어낸 것까지 일일히 언급하기 힘들 정도다. 특히, 기념우표는 그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으나 오늘 처음 알게 되었는데, 도안이 정말 가관이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사람이 일어나 뛰어가서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을 하는 도안인데, 이건 마치 황우석을 신격화라도 시킬 요량으로 불치병이라도 단번에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딱인 도안이다. 실험실과 임상과의 차이점은 무척 크며, 실험실에서의 성공이 임상에 바로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자연과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저런 성급한 일반화 및 확대해석의 오류를 정부가 앞장서서 해 주었던 것이다.
황우석 기념우표. 이제는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어려운 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기자들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마 의학전문 기자라 할지라도, 아니 M.D. 출신의 홍혜걸 기자라도 그 동안 보지 않았던 전공 서적이나 관련 저널들을 들추며 기사를 작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몰라도 기사의 일관성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황우석 박사가 한참 잘 나갈 때에는 마치 그를 위해 장렬히 전사할 수 있을 것처럼 그를 떠받들기에 정신이 없었고,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험담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언론의 힘으로 깔아 뭉게기를 일삼더니만, 황우석 박사의 잘못이 드러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노선을 화악 바꾸어 열심히 황우석 욕하기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줏대없는 언론이라니. 미리미리 좀 알아보고, 잘 나갈 때라도 잘못한 점이 있지는 않나 조심스런 비판도 해 보고 했으면 이런 평은 듣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황우석 위인전이었다. 세상에나.. 위인이라는게 이렇게 쉽게 사회적 합의를 받아 선정될 수 있는 것인 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위인전은 어린이들이 그 대상 아닌가. 우리나라의 새싹들인 어린이들이 이 사태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다. 시류에 편승해 책 한 권 더 팔아보겠다고 나선 출판사들이 원망스럽다.
황우석 관련 각종 책들
아직 우리나라엔 건전한 토론 문화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판을 비난으로 받아들여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공격성 또한 매우 위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소위, 황빠와 황까로 나뉘어 근거도 없는 인신 공격을 남발하는 걸 보면, 건강한 비판조차 설 자리가 없는 듯 하여 매우 아쉬웠다. 특히, 황우석 박사 지지자들의 대표적인 모임인 다음의 '아이러브 황우석' 까페의 글들을 보면 객관적인 근거에 입각한 이야기보다는 감정적인 호소를 하는 글들이 훨씬 많고, 황우석에 대한 비판글을 올린 사람을 강퇴시키자는 이야기가 서슴없이 나오는 등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모임이 되어버렸다. 물론, 무턱대고 황우석을 욕하는 이들도 무조건 황우석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똑같다. 그나마 다행인건, 포항공대의 BRIC이나 한국과학기술연합, 그리고 DCInside의 과학갤러리 등 갖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객관적 근거와 논점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젊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의 파장이 엄청나서 각종 사회 현안들이 다 뭍힐 지경이다. 부디 어물쩡 넘어가지 말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학계의 문제점과 그와 관련된 정/경의 문제점들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이렇게까지 나라가 휘청거리는데 발전적인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이런 엄청난 문제에 대한 포스팅에 결론이 이거라니, 정말 해결법을 찾기 어려운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