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일기 및 아쉬운 상혼에 대한 투덜거림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 저녁 즈음에 민들레 아가씨를 만나서 저녁 먹고 대형 할인점에 가서 아이쇼핑을 했다. 다른 커플들도 이러고 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대형 할인점을 즐겨 찾는다. 요즈음에는 대형 할인점에 푸드 코트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먹거리, 볼거리가 있고, 아이쇼핑도 할 수 있고, 다양한 상품들을 구경하면서 이야기 할 거리도 아주 많고, 중간중간 앉아 쉴 수도 있고, 주차료도 안 받으니 시간 걱정도 없고, 날이 더울 땐 시원하고, 날이 추울 땐 따뜻하구 말이다. 어디 비싼 곳 돌아다니는 것보다 한 곳에서 해결하니 좋다고나 할까. :)

이번에도 역시 가전제품을 눈여겨 보면서 돌아다녔는데, 제품 간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데도 가격의 차이가 큰 것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극명한 차이점은 세탁기에서 보였는데, 통돌이는 정말 저렴한 축이 되어버렸고, 드럼 세탁기도 9Kg짜리는 30만원 대의 제품이 있는데 반해 10Kg짜리는 모두 60만원 이상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차이라고는 1Kg의 세탁용량 차이 뿐인데 말이다. 물론 세세한 기능이 다르긴 하겠지만, 살균력 99.9%를 99.99%로 올렸다는 은나노 기술이 추가된 것이라면 별 필요 없을 듯 하다. TV 쪽을 보면 브라운관 TV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할인점에나 가야 있지, 백화점 가전 매장에는 아예 브라운관 TV가 없다. 모두 LCD나 PDP 뿐. 보통 30, 40인치부터 시작하니 가격도 만만치 않다. 대강 200만원부터 시작. 저런 것으로 혼수를 해야 하나~ 생각을 해 보면 정말이지 견적이 나오질 않는다.

아무튼, 민들레 아가씨네 집에 필요한 귤 한 상자와 세탁용 세제를 산 것 빼놓고는 아무 것도 사지 않았는데, 두 시간 이상씩 아이쇼핑만 재미있게 하는 우리들도 특이한가보다. :)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민들레 아가씨와 멋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일전에 가 보았던 분위기 좋은 경양식집을 찾아갔다. 나름대로 그 동네 인근에서는 비교할 곳이 없을만큼 자존심을 가진 곳이고, 일전에는 저렴한 점심 메뉴를 먹었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꾸미고 깔끔한 샐러드바도 제공하는 등 마음에 들어서 다시 찾았다.

5시 반 정도에 도착을 했는데, 날이 날이니만큼 이미 손님이 많았다. 자리에 앉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메뉴판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그러고 봤더니 테이블 위에 자그마한 새로운 메뉴판이 있는게 아닌가. 통돼지 바베큐 3만원, 안심 스테이크 4.5만원, 안심 스테이크와 쉬림프 4.5만원, 그리고 너무 비싸 읽어보지도 않은 메뉴 6만원. 허거걱!!! 크리스마스 특별 메뉴였던 것이었다! 나갈까 말까 고민을 좀 하다가, 이왕 분위기 내보기로 한 거 시키기로 했다. 나는 통돼지 바베큐, 민들레 아가씨는 안심 스테이크.

주문을 받더니 음식 나오기 전에 샐러드바를 이용하라고 알려주었다. 나가보았더니 이미 샐러드바의 반 이상이 비어있는 상황. 원래부터 다양한 종류는 아니었지만 깔끔한 맛이 있었는데, 바빠서 신경을 못 쓰는 것인지 정말 부실하고 먹을 것이 없는 샐러드바였다. 특히나 따뜻하면 좋을 것들도 그냥 방치되어있어 다 식어있었다. 그래도 이것저것 집어 들고 자리에 돌아오니... 이런, 포크나 나이프 등의 셋팅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직접 가서 이야기 하니까 서둘러 달려와 놓아주고...

민들레 아가씨의 안심 스테이크가 먼저 나왔는데 보자마자 실망했다. 아웃백에 가서 시켰으면 더욱 저렴한 가격에 훨씬 크고 맛있는 고기가 나왔을텐데.. 라는 생각이 보자마자 들 정도였다. 게다가 고기의 온기는 이미 상당히 사라진 상태고, 야채튀김인지 튀김옷만 튀긴 것인지 정체불명의 튀김도 다 식어있고... 나의 통돼지 바베큐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다가 재촉하려는 순간 나왔는데, 허어~ 바베큐 살을 갈기갈기 찢어 접시에 담아온 것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바베큐 소스도 없어 물어봤더니 그재서야 샐러드바에 있으니 가져다 드시란다.

이미 기분은 100% 나빠져 있었지만, 분위기를 위해 참고 또 참았다. 크리스마스라고 비싼 메뉴 몇 가지만 쏙 빼놓고 그것만 된다는 것부터 기분이 안 좋았는데, 바쁘다고 뛰어다니는 종업원들, 어지럽게 비어있는 샐러드바는 이용할 기분이 나질 않게 만들고, 그나마 먹고 싶어도 새 접시가 도착하지 않아 담을 접시도 없었으며, 주인이신 듯한 한 아주머니께선 손님들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고 '자리 없으니 손님 더 이상 받지마!'라고 소리를 치고 있고, 가져다 주는 음식은 모두 식어있고, 우리가 디저트를 아직 안 시켰음에도 디저트 깜빡 했다고 와서 사과하는 종업원 하며.... 샐러드를 먹으러 나갈 때 보니 한쪽 구석에서 포장배달 된 돼지 바베큐를 손님들 다 보는 곳에서 갈갈이 살을 찢어 접시에 담고 있었다. 완전 실망. 그나마 그 때는 바베큐 소스와 머스타드 소스를 위에 뿌려주던데, 나에게 가져다 줄 때에는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 손님 수나 가게의 크기에 비해 종업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또각거리는 구두굽 소리에 서로 이야기하고 소리치는 통에 조용히 식사를 즐길 수도 없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사장님인 듯한 아저씨께 한 마디 하고 싶었다. 이런 수준의 서비스를 이 가격 내고 받으라니 두 번 다시 오기 싫다고 말이다. 못 하고 나왔는데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7만 5천원이면 아웃백이나 TGIF에 가서 둘이서 뜨끈하고 맛있는 립과 스테이크를 친절한 서비스와 함께 먹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크리스마스 상혼에 아쉬움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