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기도 길고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내과 인턴의 4주가 지난 일요일로 끝났다. 첫 주는 풀당, 둘째주부터는 퐁당당이었으나, 유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무리 힘들어도 아기 보고 싶은 마음에 오프일 때 꼬박꼬박 가서 봤더니만, 육아당직을 하게 되어 혼자서 계속 풀당을 선 것과 다름 없었다. :)
그런 와중에 일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비효율적인 업무처리방식이었다. 물론, 적은 전공의 수에 비해 너무도 많은 입원 환자들, 거기에 응급실과 중환자실까지 합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인데, 이렇게 물리적으로도 많은 일 때문에도 힘들기도 하지만, 서로 바빠서 그런지 조금만 더 도와 하면 한번에 쉽게 해결될 일을 어렵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 많이 아쉬웠다. 예를 들어, 지나가다가 언제 뭔가를 해 달라고 해서 시간 맞추어 병동에 갔는데 담당 간호사는 자리에 없고 있는 간호사들은 그 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그래서 일을 찾고 찾다가 결국 못 찾아 다른 곳에 가 일 하고 있으면 담당 간호사가 콜 해서 일 해 달라고 한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자기가 자리 비우기 전에 어떤 일 해야 하는지 환자와 할 일을 적어두고 갔다면 이런 삽질은 쉽게 피할 수 있지 않나. 뭐 이런 건 빙산의 일각이다.
예전부터 인턴이 하는 일은 의과대학에서 배운 것과 상관없다고들 하더니만, 내가 내과에서 했던 일 중 꽤 많은 부분이 초음파나 심전도 기계 배달하기, 서류 복사하기, 공고문 만들어 붙이기, 70명 정도 참석하는 내과 회의 자리 배치 등 준비하기, 환자의 외부병원 필름이나 CD 배달하기 등이었다. 이걸 꼭 의사인 내가 해야 하는가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해봤으나 결론은 하나. 인턴은 임금이 싸고 언제든지 불러 일 시킬 수 있다는 점, 게다가 아무리 시켜도 쉽사리 그만두지 않는다는 점 때문인 듯 하다. 만약, 비정규직에게 아무리 잡일이라 해도 24시간 일 시킨다고 하면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그러다, 지난 번에 썼던 글 속의 흉부외과에 다시 오게 되었다. 새로 추첨한 일정 중에 흉부외과가 다시 있었던 것. 잠시 하고 떠났다가 근 3개월만에 돌아와 일을 하려니, 뭔가 다 아는 듯 해서 인계는 거의 받지도 않았으나, 실제로 일 하려고보니까 잊은 것이 많아서 초반에 많이 버벅거렸다. 그래도, 시키는 잡일만 하는 수동적인 인턴에서 우리 병원의 특성 상 인턴이 주치의 역할을 해야 하는 흉부외과에 돌아오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환자를 만나게 된다. 하루에도 두 세 번 씩 나 혼자 회진을 돌고, 그런 후에 교수님들과 회진 돌고 하다보면 환자나 보호자와도 한결 가까워지고 환자 상태에 대해서도 자연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지한 내가 뭘 더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책임감이 더해졌지만, 주치의 하는 재미랄까? 하지만, 이것도 환자 수가 적당해야 가능하지, 자신이 주치의로 봐야 하는 환자수가 몇 십 명이 되어버린다면 역시나 힘들 것이다.
10분, 아니 1분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던 내과 인턴에서, 의국장이자 1년차이자, 인턴이기도 하지만 큰 일이 별로 없는 흉부외과 인턴이 되고보니, 아침에 내리쬐는 햇살이 어찌나 찬란하고 아름다워 보이는지 모른다. :) 까칠했던 내과 인턴 자유는 가고, 여유롭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흉부외과 인턴 자유가 되었다.
헌데, 흉부외과는 일 오후 ~ 토 오전까지 풀당이라 우리 색시랑 유진이를 못 봤네.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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