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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유럽

[무대뽀 유럽배낭여행] 21일.. 필라투스에 오르다

2001. 7. 27. 금

역시 자명종 소리에 일어났다. 8시였다. 어제 이야기 했던 세 명은 인터라켄 가서 융프라우요흐 올라간다더니 벌써 가고 없었다. 남은 두 명은 아직 자고 있고... 세수하고, 면도 하고, 아침으로 물과 빵. ㅠ.ㅠ(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이야기 하지 말라. 돈 없어서 맨날 슈퍼마켓 빵 사먹어야 하는 이 비애. ㅠ.ㅠ) 어제 필라투스 산 올라가는 걸 관광안내소에 물어봤었는데, 융프라우요흐보다 반 이상 싸고(융프라우요흐 115 CHF, 필라투스 42.80 CHF) 루체른에서 바로 갈 수 있어서 필라투스로 마음을 바꾸었다.(목구멍이 포도청이다. ㅠ.ㅠ)

9시쯤 관광안내소로 가서 필라투스 가는 티켓을 샀다. 역 바로 앞에 있는 선착장에서 배를 잡아타고 출발~! 여기 배가 증기선이라던데, 다 증기선인건지, 일부만 증기선인건지는 모르겠다. 근데, 증기선이라면 석탄 때워서 연기도 무지 많이 나고 할텐데 안그러는걸 보면 증기선이 아닌 것도 같고... 아님 석유를 때우는 증기선인지... 암튼, 배로 타고 알프스의 호수를 떠다니는 것은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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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표를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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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표로 준다.


맨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알프나흐슈타드였다. 미리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가 산악열차 타는 곳으로 뛰듯이 걸어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체른 관광안내소에서 샀던 티켓을 주고 티켓을 받고(산걸 그냥 쓰는게 아니라 새로 티켓을 받아야한다. 그걸 지하철 검표기 같은데 넣어야 들어갈 수 있다.) 차례를 기다렸다가 기차 맨 앞에 가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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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ATUS에 올라가는 가장 가파른 철길로 가는 기차가 보인다.


기차가 정말 신기했다. 계단식으로 되어있어서 기차가 한 45도 정도는 기울어져있었다. 하긴, 기차길도 기울어져있으니... 여기서 필라투스까지 올라가는 철길이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철길이라고 했다. 드디어 출발~! 뒤로 넘어갈 것만 같은 경사를 기차는 잘도 올라갔다. 이런 길을 기차가 다닌다는 것도 신기하고, 이런 경사에 철길을 놓았다는 것도 신기하고, 점점 올라갈 수록 보이는 경치들도 믿을 수 없이 신기했다. 거의 45도로 기차가 계속 올라가니까 계속해서 침을 삼켜서 내이와 외이의 기압차를 같이 유지시켜주어야 했다. 올라가다보니 소 키우는 목장도 나오고, 암벽에 매달려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고,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는(들은 바로는 4시간이 넘게 걸린다는데...)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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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뚫어 만든 터널로 들어가는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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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철길이 보인다. 구불구불 산길을 걸어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깍아지를듯한 절벽을 따라 4, 50분 올라가니 드디어 필라투스가 나왔다. 해발 2132미터. 24년동안 살아오면서 와봤던 곳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기차에서도 느꼈던 것이었지만, 올라갈 수록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필라투스에 도착하자마자 얇은 잠바를 꺼내입었다. 근방을 잠깐 돌아보기로 했다. 30분이 걸린다는 길로 들어갔더니 산을 뚤어서 동굴을 만들어 놓은 길이 나왔다. 중간중간에 구멍을 뚤어서 밖을 보도록 해 둔 곳이 있었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동굴이 끝나자 이어지는 계단. 무서워서 거의 기어 올라갔는데, 계속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ㅠ.ㅠ 긴장으로 인해 심장도 빨리 뛰고, 땀도 나고, 숨도 거칠어지고... 30분 걸린다는 코스를 언능 걸어서(그것도 벽쪽으로 바짝 붙어서) 넓고 편평한, 두 호텔 사이로 돌아왔다.(그래~! 나 높은거 무지 싫어한다. 아니 높은거 무지 무서워 한다. -.- 고소공포증이닷~! 그래서 등산은 좋지만, 꼭대기는 싫어. ㅠ.ㅠ) 자리를 잡고 앉아 브뤼셀에서 샀던 빵, 호텔에서 아침 먹고 챙겨온 버터, 오늘 민박집에서 받아온 물, 퓌센에서 호텔팩 사람들에게 얻었던 초콜릿 잼... 옆에서 파는 소세지도 먹고 싶고, 식당에 맛있는거 많았지만 그거 먹을 돈이 어디있는가. -.- 하지만, 남은 돈을 계산해 보니 약 100 CHF. 스위스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퐁뒤를 먹어볼까, 아님 빅토리녹스 칼(맥가이버 칼)을 살까 고민 중이다. 아예 두 개 다 해버릴까?? 퐁뒤가 약 40 CHF, 잴 싼 칼이 20 CHF이었으니까... 그거 다 해도 40 CHF 남네. 아, 오늘 숙박비 25 CHF 빼면 15 CHF 남는군. 안 먹고, 안 사고 아껴서 프랑스로 넘어갈까... 고민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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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투스 정상에서... 뒤의 기둥엔 각 언어로 환영의 말이 적혀있는데, 한국어도 있다.


이제 슬슬 내려가야 할텐데, 걱정이 앞선다. 케이블카 타고 나려가야 하는데, 이거 봤더니만 장난이 아닌 것이었다. 기차야 경사가 심해도 밑은 땅(산)이었지만, 이거 케이블카는... 우. -.-

잠시 쉬다가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갔다. 표를 넣었더니 삑삑 거리고 안 들어가지는게 아닌가. 직원에게 말했더니만 표를 바꾸어오라고 해서 캐이블카 타는 표로 바꾸었다.(사실 그냥 기차타고 내려가는게 속편했지만, 새로운 루트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무섭지만... -.-) 케이블카 타는 곳에 갔던니 이미 사람들이 꽤 모여있었다. 여기서 밑을 보니 아찔~! 케이블카에 들어갔더니 흔들흔들 하는게 장난이 아니었다. 케이블카에 쓰여있는 걸 보니까 정원이 40명. 그래서 그런지 케이블카에 입추의 여지 없이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어떤 미국아저씨(로 보이는 아저씨)가 하도 허풍을 떠는 바람에 무서운게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무서운걸 어쩌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철렁철렁 하면서 내려가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동조의 눈빛을 보냈더니 그 사람도 같이 웃어주었다. 케이블카로는 필라투스의 약 3분의 1쯤 내려왔다. 그 다음부터는 곤돌라. 곤돌라를 타기 전에 케이블카에서 내렸는데, 봅슬레이 같은 걸 타는 것이 있었다. 잼있어 보여서 타는 곳에 갔더니만 어른 한 번 타는데 7 CHF. 이걸 탈까 말까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에라, 함 타보장~! 해서 표를 끊고 들어갔다. 바퀴가 달린 썰매를 타고 트랙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가운데에 레버가 있어서 당기면 브레이크도 걸리고. 속도를 좀 내볼량으로 앞 사람이 출발하고 좀 있다가 출발했다. 케이블카에서 봤을 때에는 그렇게 빠른 것처럼 안 보였는데, 직접 타니까 오옷... 빨랐다. 커브를 그냥 들어가고 싶었는데, 혹시나 튕겨나갈까봐 브레이크를 조금씩 쓰면서 트랙을 따라 내려갔다. 트랙은 상당히 길었다. 1분은 훨씬 넘게 탄 것 같았다. 다 타고 나면 내려왔던거랑은 반대로 거꾸로 리프트에 끌려서 올라갔다. ^^ 여기서 보는 경치도 장난이 아니었다. 사진을 잘 찍을 줄 알았다면 뭔가 작품을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실력이 없는 관계로 카메라 들고 이리저리 둘여다보다가 그냥 필름 아끼자고 안 찍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곤돌라를 탔다. 케이블카는 컸지만, 곤돌라는 4인용이었다. 그나마 사람이 많지 않아서 결국 혼자 곤돌라 하나를 타고 말았다. 케이블카보다 작고 해서 많이 흔들려서인지 약간 속이 울렁거리긴 했지만, 바깥에 펼쳐지는 풍경은 예술 그 자체였다. 발 밑으로 지나가는 개울, 키 큰 나무, 소와 양도 있었고, 등산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도 있었다. 한참을 타고 내려오자 땅에 닿을 수 있었다.

루체른까지는 1번 버스를 타야한다고 해서 버스타는 곳까지 갔다. 머, 특별히 찾지 않아도 관광객이 많은 곳을 따라 갔더니만 1번 버스가 와서 버스를 타고 루체른 역에 내렸다.

배는 부른데, 뭔가 허전한 기운. 돈을 아껴야 하는데 자꾸 뭐가 먹고 싶었다. 그냥 슈퍼를 가리라 다짐을 하고 루체른 구시가지를 헤매는데 떡 하니 보인 맥도널드. ㅠ.ㅠ 머릿 속에서는 '안돼~!'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들어와있었다. 빅맥 세트(9.90 CHF)와 샐러드(6.30 CHF)을 시켰다. 도합 16.20 CHF. 으.. 이거 울 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도대체 얼마냥? 만 2천원~!!! 그러나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라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아, 내일 밤까지 버텨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나...??

맥도널드에서 한참 쉬다가 밖으로 나왔다. 아까 아침에 필라투스 표를 사면서 얻은 공짜 초콜릿 표를 들고 Migros를 찾아갔다. 역시 한 번에 찾는 건 어려워서 주변을 한 바퀴 돈 후에 찾아들어갈 수 있었다. 물어보니까 히멀건한 포장의 초콜릿을 가져가라고 해서 그걸 들고 계산대로 가서 공짜로 들고 나왔다. 나는 공짜가 좋아~! ^^; 다시 들어가서 아래층에 내려갔다. 거기는 빵이랑 과일일랑 쥬스랑 먹을 것들이 많이 있었다.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무지 비싼 거지만, 살인적인 이 곳 스위스의 물가를 생각할 때 그나마 싼 곳이었다.

그냥 구시가지를 거닐다가 본 빅토리녹스 칼(맥가이버 칼). --+ 이걸 살까 말까 어제부터 망설이고 있었는데, 복잡한 건 필요없고 간단한게 18 CHF이라서, 그래 눈 꾹 감고 사자~! 들어가서 다시 이리보고 저리보고 한 후에 어제부터 점찍어 두었던 18프랑짜리를 봤다. 투명한 것으로 사고 싶어서, 투명한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 모델 말고 클래식 모델은 있다고 해서 클래식 모델 투명 파란색을 골랐다. 이름도 David Kim이라고 공짜로 새겼다. ^^; 케이스도 하나 사고... 도합 32 CHF. 이제 굶어야쥐, 굶어~!

구시가지를 돌아다니다가 어제 잠깐 보고 지나갔던 자전거샵에 가서 구경도 하고, 여기저기 들어가서 아이쇼핑만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우선 긴바지 벋어던지고 반바지로 갈아입은 후 파리에 어디서 묵어야 할 지 다시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새로 온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좀 했다.

우선 파리 숙소 예약을 하고 먹을 것도 좀 사려고 나갔다. 공중전화기를 찾는데 왜 이리 안 보이던지(울 나라는 곳곳에 공중전화기가 있는데.) 먼저 Migros 슈퍼에 갔다. 역시 쌌다. 바나나 일곱 송이, 천도복숭아 세 개, 토스트 빵, 슬라이스 치즈, 떠먹는 요구르트 네 개, 오렌지 주스 1리터. 이 모두가 14 CHF 조금 넘었다. 아 행복해. ^^;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시계 백화점 앞에 있는 공중전화에 들어가 파리 민박집 중 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예약 성공~! 런던까지 했어야 했는데, 생각을 봇 하고 숙소로 돌아와버렸다.

먹을 것들을 정리했다. 우선 토스트 빵이 있으니까 하루는 너끈히 버틸 거구, 잘 하면 파리에서 아침과 점심도 때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독일에서 목사님게 얻었던 미싯가루가 있는게 아닌가. 실험적으로 한번 타보았다. 그런데, 병 입구는 너무 좁고, 봉지 뜯어진 곳은 너무 커서 넣기가 매우 힘들었다. 같이 주셨던 꿀까지 넣어 맛있는 미싯가루를 만들어서 조금 마시고 내일 먹을 것을 만들어 두었다.

한참 미싯가루와 씨름을 한 후에 런던에 숙소를 잡으려고 전화번호를 찾았는데, 이런~! 메모장 두 개 모두 없어진게 아닌가..!! 뜨아, 아까 파리에 전화하고 그냥 안에 두고 나온게 틀림없었다. 정신없이 공중전화박스로 찾아갔다. 누가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안에 보니까 아직 잘 있는게 아닌가.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도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메모장을 가지고 나왔다.

바로 옆에 빈 곳에 가서 런던에 전화를 걸었다. 런던의 두리 하우스였는데, 다행히 예약이 되었다. 아직 날짜는 정확치 않으니 곧 다시 전화해 드린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해서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지금은 루체른에서 Blue Balls Festival 기간) 가는 길에 어제도 봤었던 인형같은 아저씨들의 공연도 다시 보고, 스프레이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구경하다가 공연장으로 갔다. 오늘은 여자 보컬을 앞세운 밴드였다. 블루스와 락, 컨트리를 넘나들며 재미있게 공연을 봤다. 울나라 같았으면 이런 곳에 아이들밖에 없을 텐데, 여긴 다 아줌마, 아저씨들, 심지어 아이들을 대려온 부모들까지. 그리고 다 나름대로 즐기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음악에 몸을 맏기고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보컬이 깜짝 손님을 소개한다고 해서 봤더니 맹인 한 명이 기타를 가지고 나왔다. 박수와 함성, 휘파람 소리가 대단한 걸로 봐서 이 곳에서는 꽤 알려진 사람이었나보다. 특이하게 기타를 세워치는게 아니라 무릎 위에 눕혀놓고 기타를 쳤다. 근데 어찌나 잘치던지, 박수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앞이 안 보이는 장애를 극복하고 이렇게 기타를 잘치다니...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이 더더욱 커졌다.

재미있게 공연을 보다보니 벌써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11시에 문 닫는다고 해서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사워를 하려고 했지만, 여자들이 벌써 줄서 기다리고 있어서 포기하고 낼 아침에 일직 일어나 하기로 했다. 그냥 양말만 빨고 바로 누워 잤다. 내일은 인터라켄만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