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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유럽

[무대뽀 유럽배낭여행] 19일.. 브뤼셀에서 하루를 보내고..

2001. 7. 25. 수

벌써 19일째다, 인천을 박차고 날아오른지... 유럽에서만 18일째. 여행도 이제 종반을 향해 가고 있다. 오늘까지 유럽에서 딱 13일만 있으면 런던을 박차고 날아오르게 된다. 물론 방콕에서 6일간의 스톱오버(Stop Over)가 있긴 하지만...

벌써 오늘이 되었다. 계획은 대강 세웠으니 짐을 좀 싸다가 자야겠다.

자명종 소리에 일어난 시간은 7시 30분. 1시 조금 넘어서 잤으니까 여섯 시간이 조금 넘게 잤나보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면도도 하고(오늘 아침 아니면 내일 밤에나 씻게 될테니... 야간열차 때문에) 그 동안 살면서 벌려놨던 짐들을 하나하나 다시 꾸렸다. 생각보다 짐이 많지 않아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스트팩을 빼내었고, 스포츠샌들도 안 넣었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만 챙기는데 그게 한 짐이었다. 지난 토욜에 산 빵이며 음료수, 잼, 요구르트, 토마토가 조금씩 남아있었다. 오늘 하루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물병 두 개에 둥굴레차를 넣었더니... 장난 아니다. ^^;

8시가 조금 넘었더니 목사님께서 일어나셨다. 아침 먹고 나가라는 말씀에 같이 드시자고 해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먼저 물을 끓이다가 스프를 넣고, 남아있던 프랑크 소세지를 잘라서 넣었다. 물이 끓기 시작할 때 누릉지를 넣어서 팔팔 끓이다가, 고추장을 첨가해서 끓인 후 면을 넣어 삶았다. 보글보글... ^^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목사님과 함게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하니까 벌써 시간이 8시 45분~! 53분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설것이를 하고 마지막으로 가방을 챙기는데, 목사님께서 가져가라며 미숫가루와 꿀을 주셨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ㅠ.ㅠ

후식으로 토마토 하나를 입에 물고 허둥지둥 목사님께 인사를 하고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토마토를 다 먹으니까 버스가 와서 Oespel역으로 갔다. S-Bahn이 올 때까지 가방 정리를 좀 하다가 타고 도르트문트역에 도착했다. 오늘 타야하는 기차는 이체. ^^ 이 좋은 이체도 오늘 독일과의 이별과 함께 끝이다.

이따가 국경을 넘어 벨기에로 넘어가면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독일과도 안녕이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참 좋은 나라였는데... 영어도 잘 통하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자전거 가져와서 독일만 한 달 정도 여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 안에서 심심해서 엽서 두 장을 썼다. 하나는 기식이에게, 다른 하나는 대영이에게. 보내준다고 약속을 했으니 보내주어야쥐.

드디어 벨기에에 도착했다. 브뤼셀 중앙역에 내렸는데, 기차가 지하로 들어와 있었다. 여기는 기차역이 지하에... 우선 환전소를 찾았다. 가지고 있던 24DM을 바꾸니까 402 벨기에 프랑을 주었다. 바로 코인라커(Coin Locker)나 짐보관소(Luggage Center)를 찾았다. 위아래로 좀 왔다갔다 하다가 짐보관소를 찾아 배낭 하나를 맡겼다. 짐 하나당 90 벨기에 프랑인데 찾을 때 주면 된다고 쓰여있어서 언능 역 밖으로 나왔다.

여행 안내서에 따르면 그랑 플라스에 가야한다고 쓰여있었다. 브뤼셀 정치, 경제의 중심지라나?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격찬했다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봐야지. 역 바로 옆에 Information Center가 없어서 책에 있는 지도를 보고 방향을 모르고 헤매고 있는데, 한 한국 여행자가 말을 걸어왔다. 런던 in 하고 브뤼셀에 오늘 아침에 왔다면서 숙소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여기저기 다 둘러봤다고 했다. 이제 더이상 갈 곳이 없다면서... 만난김에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하루 헤매인 사람답게 금방 책에 있는 지도에서 알려주었다. 나두 헤매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랑 플라스 옆에 와 있는게 아닌가? 그 사람과 헤어지고 그랑 플라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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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의 시청사. 멋지구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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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 맞은 편의 건물. 왕궁이었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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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시청사 앞 광장에서 찰칵~!


아따... 유럽의 시청사는 다들 왜 이모양인지. 브뤼셀 시청사도 장난이 아니였다. 100미터 가까이 솟아있는 탑이 있는 건물인데 맨 위에 금도금을 해 놓은 입상이 하나 있었다. 맞은 편에는 왕의 집이 있었다. 지금은 시립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는데, 들어가보려고 했더니만 입장료가 있어서 바로 돌아나왔다.
무슨 사진전을 시청 아래에서 하고 있었다. The Eye of Beholder. 무료 입장이라길래 어짜피 시간도 많고 해서 들어가 사진을 보았다. 역시 작가가 찍은 사진이라 다들 멋쥐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진도 있는 걸로 봐서 유명한 아저씨였나보다.
시청 아래에 관광 안내소가 있었다. 들어가서 City Map 하나 받아왔는데, 주는 직원이 너무 친절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밤기차를 브뤼셀-미디 역에서 타야 하는데, 어떻게 가는지도 다 알려주고, 가까운 우체국을 물어보니까 지도에 자세히 표시해 주었다. 물론 직원의 본분이기는 한데, 얼굴에 미소를 띄고 기꺼이 해 주는 모습이 정말 기분 좋게 했다.

관광 안내소를 나와 우체국으로 갔다. 아까 직원이 잘 알려주어서 어렵지 않게 우체국을 찾아 엽서 두 장을 부칠 수 있었다.(각 34 BFr, 총 68 BFr) 우체국을 나와 오줌 누는 소년상을 보려 갔다. 가는 길에 그랑 플라스 바로 옆에 있는 성 니콜라스 사원에 잠시 들렀다가 갔다.

약간 헤매다가 오줌 누는 소년상을 찾을 수 있었다. 이미 들어 작고 별 볼일 없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정말 작았다. 그리고 알몸이 아니라 가발에 옷, 양말, 신발까지 입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옷 중에 하나를 입은 모양이었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부탁해서 사진 한 방 찍었다. 주위에 있는 가게를 보니 여러가지 옷을 입힌 모습을 찍어 놓은 사진, 엽서, 카드 등을 팔고 있었다. 다양한 소년상을 보다가 떠났다.

알베르토 1세 국회도서관으로 향했다. 앞에 어떤 아저씨가 말타고 있는 모습의 커다란 동상이 있던데, 그 아저씨가 아마 알베르토 1세였나보다. 그 앞에서는 많은 벨기에 아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었다. 벨기에에선 스케이트 보드가 인기있었나보다. 조금 올라갔더니 공원도 있고, 도서관 건물도 나오고... 더 올라가니까 왕립 근대미술관이 나왔다. 건물만 감상하고, 바로 앞에 있는 르와이알 광장으로 갔다. 역시 어떤 아저씨가 말 타고 있는 커다란 동상이 하나 있는, 말 그대로 광장이었다. 동상 뒤에는 큰 성당이 있어서 들어가 봤는데, 딱 보니까 그리 오래되어보이지는 않았다. 현대적인 느낌이 난다고 할까. 한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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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1세 국회도서관으로 추정되는 건물. ^^ 옆에는 음악박물관이 있었다.


바루 옆에 왕궁이 있었다. 성당을 나와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돌면 브뤼셀 공원 맞은 편으로 왕궁이 있었다.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이었는데, 입구라고 쓰여있는 곳에 갔더니 닫혀있었다. 그냥 공원쪽으로 넘어가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외국은 여기저기에 공원이 있는게 참 좋다. 아테네의 국립정원, 뮌헨의 영국정원에 비할바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나무도 많고 그늘이 많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나두 앉아서 잠시 휴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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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왕궁. 너무 늦게 간건지, 다들 나오는 사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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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앞의 공원. 우리나라와 달리 시내에도 커다란 공원이 많아 부러웠다. 피곤한 다리도 쉬게 할겸, 잔디밭에 누워 책도 보고 놀다 찍은 사진.


공원을 나와 바로 앞에 있는 국회의사당을 잠시 보고 성 미셸 대성당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 그 동안 파이프 오르간을 본 적은 많지만 직접 연주하는 것을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큰 성당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는 것 같은 느낌. 어떻게 저런 악기를 만들었는지, 왜 그동안 파이프 오르간의 매력을 몰랐었는지... 연주가 끝나자 성당 안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 성당 안은 온통 스테인드 글라스였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으며 보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정말 멋있었다. 성 미셸 대성당이야 말로 브뤼셀 최고의 볼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성당으로 들어간 곳은 정문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성당 안을 돌면서 스테인드 글라스를 봤다. 다시 봤더니 이 성당도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처럼 성당이 십자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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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셸 대성상의 파이프 오르간. 마침, 들어갔을 때 연주 중이었는데, 감동 그 자체. 최고!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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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셸 대성당 내부의 모습.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심취해 있었다.


성당 밖으로 나와 보니 어떤 사람이 성당을 배경으로 혼자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사람이 찍고 나서 나도 그대로 찍어달라고 Excuse me.. 하는데, '한국사람이에요.' 하는게 아닌가. 무안하기도 하고, 머리를 긁적긁적. ^^; 파리로 들어와서 벨기에로 바로 왔다고 했다. 뮌헨이랑 퓌센도 가신다길래 이렇게 저렇게 알려드리다보니 또 다른 한국 여행자 한 분이 오시는게 아닌가. 한국말 쓰는게 반갑다면서 대화에 합류하게 되었다. 어제 파리 도착해서 바로 벨기에에 오셨다면서, 일 때문에 가구랑 카페트를 주로 보며 다니신다고 했다. 근데 아직 숙소를 못 잡아서 무거운 배낭을 매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이야기했던 분이 같이 숙소에 가자고, 싸고 취사도 되고 좋아고 해서 그 분들끼리 같이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또 다른 한국분이 합류. 저녁 식사 약속을 다른 한국인 여행자와 했다고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집트부터 올라오신 분이었는데, 역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윽고 약속한 분이 오셨는데, 어라, 아까 봤던 그 분. ^^ 세상 참 좁다. 조금 더 이야기 하다가 시청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이 가기로 했다. 402 BFr 중에서 68 BFr 썼고, 배낭 찾을 때 90 BFr 줘야 하니까 대강 230 BFr 정도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서 쇼핑을 시작했다. 케익(만드는 빵. 여기에 크림, 과일 등을 얹으면 케익이 되는 빵이다.)이랑 한 열댓개가 한 봉지에 들어있는 빵, 주스 1리터 짜리 두 개. 이렇게 사니까 238 BFr이 나왔다. 아슬아슬.. ^^ 96 BFr 남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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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셸 대성당을 나와 다른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 찍어주신 사진. 멋지다. ^^


쇼핑을 끝내고 다들 헤어졌다. 두 분은 숙소 잡으러, 두 분은 저녁 식사하러... 나는 다시 시청 앞으로 왔다. 사온 빵을 먹으며 허기도 달래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옆에 누가 와서 서는 느낌이 있어서 봤더니 아까 잠시 같이 있었던, 저녁 먹으러 간다던 사람들이 와있었다. 저녁을 잘 먹고 온 거라고.(누구는 빵 뜯고... ㅠ.ㅠ) 광장에서 아저씨 둘이서 성악곡을 부르고 있었는데, 한참 그거 구경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다가 어떤 한국 여자 여행자 한 명이 와서 숙소를 물어봤다. 나야 여기서 밤기차로 떠나니까 아는게 없고, 남은 두 사람이 전화나 해 보라며 전화번호를 몇 개 알려주었다. 아마 숙소 잡기에는 늦은 시간이라 함들 것 같은데... 전화한다며 고맙다고 하고 그 사람은 갔다. 한참 그 자리에 서서 계속 이야기 하고 있는데, 다시 오는게 아닌가. 전화해 본 곳에 다 방이 없다면서 이참에 그냥 뮌헨으로 떠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나랑 같이 역에 가서 표도 알아보고 하자고 해서 같이 중앙역으로 갔다.

뱀다리...
브뤼셀 중앙역은 말이 중앙역이지 중앙역이 아니다. 아마도 브뤼셀 가운데에 있다고 중앙역이라는 것 같은데, 그냥 좀 커다란 지하철 역같다. 대부분의 국제열차는 남역(Bruxelle - Midi)에서 출발한다.

열차를 알아보니 10시가 조금 넘어서 뮌헨 가는 기차, 그것도 중간 새벽 세 시쯤 갈아타야 하는 열차가 하나 있어서 그걸 타자고 남역으로 가기로 했다. 내가 맡겨 놓았던 배낭을 찾아서 오니까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 두 명이 숙소를 구하고 돌아다니는 중이었는데, 체크인 할 때 보니 자리가 좀 있었다면서 그 쪽으로 가려는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브뤼셀 이쁘다고 하루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하든 사람들이라 숙소를 먼져 알아보기로 했다. 아직 기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으니까. 그럼 여행 잘 하시라고 하고 혼자 브뤼셀 남역으로 갔다.

남역에 도착하니 9시 30분. 대합실에 앉아 해리포터를 읽기 시작했다. 1권인 마법사의 돌을 거의 다 읽고 있던 중이라 끝장을 보기로 마음 먹고 읽었다. 다행히 10시 15분 쯤 다 읽을 수 있었다. 약간은 황당한 이야기지만, 머 다른게 가진게 없어서...(아, 플루타크 영웅전이 있긴 했지만.)
아까도 몇 번 확인했었지만, 스위스 가는 499번 열차가 12번 트랙에서 출발한다고 해서 12번 트랙에 올라갔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플랫폼에 있는 정보판에도 제대로 쓰여있었고, 차량 정보를 보여는 곳에도 제대로 쓰여있었다. 10시 30분. 출발 시간까지 1분밖에 안 남았는데 기차가 안 들어오고 왠 전철같은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 쿠셋을 예약했는데 이럴리 없어, 하면서 그냥 그차는 보냈다. 10시 31분. 기차가 안 들어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하고 있는데, 플랫폼의 정보판의 열차 정보가 사라져버린게 아니겠는가~! 오매, 큰일났네. 이거 혼자라 내려가서 역무원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 흔한 역무원 하나 트랙에는 보이지도 않고. 몇 분을 발만 동동 구르다가 같은 기차를 기다리는 것 처럼 보이는 중국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도 나랑 같은 기차를 기다린다면서 아마 연착되나보다고 기다리자고 했다. 근데, 10분을 기다려도 열차가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트랙에 보니 한국인 여행자 한 명이 있길래 물어봤더니 그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잠시 내 짐 봐달라고 하고 역무원을 찾아 역 안으로 내려갔다. 역무원을 찾아서 표를 꺼내들고 왜 열차가 안 들어오냐고 묻자, 청천벽력같은 한 마디. 벌써 떠났다고...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분명 12번 플랫폼이었는데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더니, 열차가 들어오기 전에 플랫폼이 바뀌어서 안내방송이 나갔다는 것이었다. 이런~! 프랑스어로만 했는지, 영어 안내 방송은 못 들었는데...
정말 큰 일이 벌어져서 허겁지겁 다시 트랙으로 올라

갔다. 그 중국인은 어디론가 가려고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Hello~! 불러 세워서 자초지정을 이야기 했더니만, 엄청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우리는 공동 운명체. 그 중국인은 부인(으로 보이는... 실례가 될까봐 헤어질때 까지 못 둘어봤다.)과 함께 있었다. 중국인 둘, 나, 그리고 또 짐 봐줬던 한국인 여행자, 이렇게 넷이서 역으로 돌아가 다음 기차도 물어보고 어떻게 해야할 지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다음 기차는 내일 아침 7시 16분. 그나마 한 번 갈아타야 하고, 바로 가는 열차는 12시라는데... 넷이 머리를 맏대고 고민한 결과, 기차가 없으니 움직이지는 못하고(나는 다른 곳에 밤 기차 타고 움직일 수 있지만, 그들은 유레일이 아닌 구간 표를 가지고 있어서 그게 안 되었다.), 역에서 밤을 보내는건 위험하고 해서 셋이서 가까운 호텔을 잡고 들어가기로 했다. 홀로 나은 한국 여행자에게는 플랫폼 확인 잘 해서 기차 놓치지 말고 잘 타라고 말하고 역 밖으로 나왔다.

호텔 사인이 켜져있는 곳으로 무작정 나왔다. Continental Hotel. 말이 호텔이지, 규모나 시설은 울 나라의 여관 수준이었다. 3인실에 들어가기로 하고 숙박료를 지불했는데, 당근 현금이 없으니 카드로 긁었다. 약 5700 BFr이었으므로 셋이 공평하게 나누어 나는 1900 BFr을 냈다. 으... 피같은 돈. 한국돈으로 5만 7천원. ㅠ.ㅠ 이 돈이면 하루 호스텔서 숙박 해결하고 하루 종일 슈퍼에서 배 부르게 사먹을 수 있는 돈인데. ㅠ.ㅠ 명세서에 싸인 하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ㅠ.ㅠ 내일 5시 30분에 모닝콜 해달라고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방은 301호였다.(유럽은 우리나라랑 층 개념이 다르다. 동남아도 그런 곳이 많다. 즉, Ground Flr, 1st Flr...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니까 301호는 우리식 3층이 아닌 4층에 있는 것이다.) 침대 세 개, 옷장, 텔레비전, 그리고 화장실 겸 욕실. 침대를 하나씩 잡고 차례차례 화장실을 썼다. 나는 간단히 샤워를 했는데, 빨래를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다섯시간만에 안 마를 것 같아서 그냥 입던거 다시 입기로 했다. 찝찝하긴 하지만, 어쩌랴. -.- 피곤하기도 하고 낼 일찍 일어나야 해서 금방 누워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