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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유럽

[무대뽀 유럽배낭여행] 28일.. 두리하우스에서 뒹굴뒹굴

2001. 8. 03. 금

소세지와 닭을 뜯어서 요리를 하고 보니, 이런, 소세지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 아닌가. -.- 왕언니가 맛을 봤다는데 별일 없었으면... 결국 닭만 겨우 요리해서(원래 오븐에 해야 하는데, 오븐이 없어서.) 3차 시작~! 약간 심각한, 인생 이야기까지 나오고, 숨어있던 참이슬도 한 병 나오고, 라면스프국까지 끓여 먹고나니 벌써 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동안 먹은거 치워야 해서 내가 팔을 걷어부치고 설것이를 했다. 사실, 어제부터 계속 얻어먹기만 해서...(한 형은 군 시절 취사병 출신, 영국서 공부하는 형은 혼자 사니까, 왕언니는 음식 짱, 그래서 계속 해주는 것만 먹었었다.) 설것이를 대강 끝내고 양치 하고 나니 새벽 2시가 되었다. 하루종일 숙소 안 나간 것도 처음이었고, 숙소에서 술 마신 것도 처음이었고, 이처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도 처음이었다.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사람들 소리에 일어나보니 8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만큼 사람이 많지 않은데, 아침에 새로 오신 분들까지 해서 아침을 먹으니 역시나 혼찹했다. 그 많은(열 댓명) 식사를 왕언니 혼자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소문으로 들었던 닭도리탕에 참치요리, 샐러드까지. 집에서 가져온 고추장과 먹으니까 정말 꿀맛 같았다. 한 시간에 걸쳐 아침 먹고 나니 갈 사람들은 다들 가고 아무도 안 남게 되었다. 아침 설것이 할 사람이 없어서(두리하우스는 설것이가 셀프다. 하긴 왕언니 혼자 음식 챙겨주고 치우고 하면 아마 앓아 누워야 할듯.) 설것이를 대강 하고 나갈 생각을 했다.

으음... 오늘도 그냥 쉴까, 하는 생각이 아침밥 먹은 직후의 식곤증과 함께 몰려왔다. 유럽여행의 마지막 기착지라 그런지 이상하게 어제부터 런던을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 책을 좀 뒤적이다가 졸음이 밀려와서 그냥 침대에 누워버렸다. 잠시 자고 일어났더니 11시가 되어있었다. 그 사이 남자 손님 둘이 들어와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거 나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오늘도 푹 쉬고, 이틀동안 대강 런던 둘러보기로 맘 먹었다. 왕언니도 12시가 되자 나갔다. 영어학원에 간다면서... 전화 잘 받아달라고 하고 나갔다.

혼자 남은 민박집에 앉아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꼭 내 집처럼 편안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예약 전화도 하나 받고, 두시가 조금 넘어서 이 근방이나 둘러보자 생각하고 나왔다. 두리하우스 바로 앞에는 Old Oak Primary School이 있었고, 그 옆에 큰(우리 기준으로 큰, 그곳 기준으로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공원 옆의 큰 건물이 교도소였다. -.-) 그 공원 가에 나있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무슨 Stadium이 나왔다. 지은지 오래되어 보이는 것이었는데, 한번 들어가 보려고 기웃거렸더니 직원이 나왔다. 뭐 도와줄거 없냐고 물어서 여기 들어가서 돌아다녀도 되냐고 했더니, 곧 뭐 한다면서 괜찮다면 금방 돌아보고 나오라고 해서 들어가 봤다. 축구장도 있고, 육상트랙도 있는, 말 그대로 스타디움이었다. 트랙에서는 뭘 찍는지 사람들이 달리기 출발 자세를 하고 있고, 카메라와 몇 사람들이 뭘 하고 있었다. 잠시 보다가 나오려는데, 후두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지나가는 비려니 생각하고 스타디움에 잠깐 들어가 비를 피하고, 빗줄기가 가늘어져서 다시 두리하우스로 걸어갔다.

슈퍼에 잠시 들리려고 방향을 바꾸어 걸어가는데, 다시 비가 막 떨어지는게 아닌가. 비 피할 곳이 없어서 나무 밑에서 잠시 피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Iceland라는 큰 슈퍼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째 길이 이상했다. 비가 많이 와서 나무 밑에 서서 비를 피하며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꼬마아이가 지나가길래 길을 물었다.(그 녀석도 나처럼 우산이 없어서 비를 그냥 다 맞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꺾고, 더 가다가 왼쪽으로 꺾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비가 오는대도 그냥 가려고 하길래 나도 같이 따라 걸었다. 방학이냐고 물었더니만,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을 해서, 영국 여행 중인데 영국에 처음 와봐서 잘 모르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몇 마디를 더 했는데, 미국식 영어에 익숙해져 있는 내 귀로는 도저히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See you later라고 하더니(이것도 잠시 후에 알아들었다.)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고 bye를 외친 후에 조금 걸어가보니, 이런 아까 완전 방향을 잘못잡고 걸었던 것이었다.

이제 제대로 방향을 잡고 가려는데 비가 계속 와서 그냥 East Acton역 옆에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주방세제와 수세미를 사려는데, 도대체 어떤 세제를 사야할지 몰라서 한참 들여다보고 망설이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들어와서, 식기세척기가 없고 그냥 손으로 접시 닦을 건데 어떤거 쓰면 되냐고 물어서 이런것 중에 아무거나 쓰라고 알려주셔서 하나 골랐다. 싼 걸로. ^^; 수세미도 하나 사서 두리하우스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비행기표 reconfirm(overbooking에 폐혜에 안 걸리려면 꼭 리컨펌 해야 한다. 항공사가 보통 좌석보다 많은 예약을 받기 때문에 꼭 확인을 해야 비행기를 못 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을 하려고 타이항공에 전화를 걸었더니 타이항공은 리컨펌이 없다면서, 그렇지만 다시 한번 확인만 해 보자고 해서 확인을 했다. 역시 영국 영어는 어려워. -.- 게대가 빨리 말 해서 자꾸 못 달아들어, pardon은 연발했다. 아예 전화건 김에 좌석까지 받아두었고, 궁금했던 히드로공항 공항세(티켓 가격에 포함되어있었다.)와 몇 청사에서 타는지도 알아냈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설것이 하면서 안 사실이었는데, 주방 세제를 잘못 쓰고 있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식기세척기에 사용하는 강산성의 세척제였다. 그걸 거품 안나는 세제래고 쓰고 있었으니... 그래서 새로 사온 주방세제와 수세미로 대강 주방 정리를 했다. 근데 워낙 어질러져 있어서... ^^; 한다고 했는데 별로 티도 안 났다.

혼자 놀다가 잠시 누워있는데 영국서 공부한다던 형이 들어왔다. 오늘 밤 10시 비행긴데 일찍 가서 표도 받고 면세점에서 쇼핑도 할 거라면서 6시 쯤 들어와서 바로 챙겨 나갔다. 어제 정말 재미있게 놀았는데... ^^ 잘 들어가시라고 인사하고 또 혼자가 되었다.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예약한 손님이었다. 무슨 공항이라고 하시는데, 히드로 공항 말고는 아는게 없어서... 그냥 East Acton역에 오셔서 왼쪽으로 쭈욱 오다보면 문에 태극기 붙은 집 있다고 알려드렸다. TV도 보고(영어만 나오니까 TV가 정말 재미없었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듣다보니 아까 전화하셨던 분들이 오셨다. 더블룸 예약하신 분들이어서 어딘지 알려드리고, 대강 사용수칙(이랄 것도 없지만. ^^; 자유로운 두리하우스) 알려드리고. 그리고 그 분들도 다시 나가셔서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