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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잡담

아버지의 차



우리 아버지께서 타고 계신 차는 97년식 레간자 1.8 오토이다. 98년 초로 기억하는데, 프레스토 - 엘란트라로 이어져 온 준중형의 차를 벗어나 드디어 진정한 중형의 세계로 가시던(비록 중고차였지만..) 아버지의 기쁨 가득한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다. 중고 거래 당시 나도 따라가서 시승도 해 보았는데, 준중형과는 다른 중형의 묵직함과 널찍한 내부 등등 좋은 것 투성이었다. 차체에 비해 엔진 출력이 조금 모자란 듯 한 것 빼고는 너무나도 좋았다.(엔진 출력이 딸린다는 것도 내가 운전을 제대로 알게된 후에 인지한 사실이었다.)

이 흰색 내감자의 주행거리는 벌써 20만 km가 넘어가고 있다. 게다가 세월의 흔적을 여기저기 가지고 있으며, 가끔 내가 운전을 하려고 시동을 걸때 마다 엔진 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프린스의 뒤를 이어 출시된 레간자는 정숙함을 광고 타깃으로 잡을 정도로 조용한 차였는데... 그나마 아버지께서 꾸준히 관리를 하고 계셔서 이 정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매 번 아버지의 차를 볼 때마다 어서 돈 벌어 좋은 차 한 대 뽑아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현대차를 좋아하시는 우리 아버지의 선호도를 볼 때 그렌져 TG 급이라면 아주 좋아하실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막내 숙부의 SM5를 좋아하신다,) 그리고 간혹 깨끗하게 세차를 한번 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생각만...

민들레 아가씨와의 데이트를 일찍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 전에 집에 들어와 밥을 먹었더니 부모님께서는 과천열대야페스티벌에 가신다고 하셨다. 연일 계속되는 데이트에 몸은 좀 피곤했지만, 오늘 아니면 기회가 없을 듯 하여 차를 몰고 서울대공원 근처의 셀프 세차장에 갔다. 7시가 다 되어 어두워지고 있었는데도 많은 차들이 있었다. 500원을 넣고 고압살수를 시작했다. 물만 뿌리고 가져간 걸레로 닦으려 했는데, 물을 뿌리며 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더러웠다. 전격 계획 수정을 하여 거품솔까지 사용하여 비누칠을 하는데, 검은 땟국물이... ^^;;; 다시 500원을 더 넣고 고압살수로 비누를 닦아냈다. 그러고 걸레로 물기를 닦아내는데... 이미 차체에는 광택이 전혀 없고, 온갖 상처들로 가득한데다 그 곳에 때가 껴 있어서 아무리 닦아도 미세한 검은 줄들의 향연은 지워지지 않았다.

수돗가 가까이로 차를 옮겨 내부 청소를 시작했다. 일 때문에 아직도 바쁘신 아버지께서는 가끔 주유소 자동세차는 하시지만, 내부 청소는 자주 못하시기 때문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대쉬보드엔 먼지가 뽀얗고, 도어트림에는 빗물과 먼지, 매연이 엉킨 검은 때가 가득했다. 수도 없이 걸레를 빨아 닦아 내면서, 이런 차를 운전하시면서도 즐겁게 일 하고 돌아오시는 아버지 생각이 났다. 엔진룸과 트렁크도 마찬가지였다. 엔진룸은 이미 두터운 먼지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너무나 짙은 때는 벗겨지지 않았다. 이미 엔진룸과 한 몸이 된 상태였다.

여기저기 신경 쓴다고 하며 세차를 하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맘 먹고 살펴보니 생각보다 차가 많이 낡았다. 이전에도 한 번 세차를 해 드렸던 적이 2002년이던가 2003년이던가.. 그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엔 서스펜션에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고, 엔진 소음과 진동은 점점 커가며, 내장재는 강한 햇빛과 열 때문에 뒤틀리는 곳이 있을 지경이다. 직물시트 역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고... 정말이지 당장에라도 새 차 한 대 사드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그게 문제다. (ㅠ.ㅠ)

오늘 못다한 세차는 조만간 다시 해야겠다. 날이 어두워 제대로 하지 못한 내부 청소랑 각종 묵은 때도 벗겨보고, 싸구려 왁스라도 한 통 사서 광택도 내드리고 말이다.

울 아부지 차도 옛날엔 이런 광택을 자랑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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