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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유럽

[무대뽀 유럽배낭여행] 15일.. 고마운 목사님

2001. 7. 21. 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깨 보니 우리의 목적지에 벌서 와있었다. 기차 차장언니들(이 기차는 차장이 언니들이었다.)이 와서 finish를 외쳐주어서 금방 일어날 수 있었다. 비몽사몽 상태에서 열차 밖으로 나오는데, 열차에 아무도 없었다. ^^;

도르트문트(Dortmund)역에서 기차를 한 번 더 타고, 버스를 타야 하는데 아무래도 버스는 끊겼을 거라고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우선 0시 57분(유럽 역은 모두 24시 표시를 한다.)에 떠나는 열차에 들어가 다시 몽롱~~한 상태에서 떠나길 기다렸다. 플렛폼에서 어슬렁거리는 독일아해들은 왜이리 불량스러워 보이던지, 암튼 별루 좋아보이진 않았다.
열차가 출발하고 세 번째 역에서 내렸다. 대학 캠퍼스로 바로 연결되던데, 여기서 걸어 20분 정도 가야한다고 하셨다. 조금 걸어가니 대학 기숙사가 나오는데, 어랏~! 정말 기숙사 잔디밭에 토끼가 돌아다니고 있었다.(기차 속에서 이야기 해 주셨는데, 정말이었다.)

한참 걸아서 드디어 오늘 등 붙이고 잘 곳에 도착했다. 학생 숙소인 듯 해 보였는데, 암튼 정신없이 들어갔다. 오... 감사합니다. ㅠ.ㅠ 독방을 하나 주셨다. 세면대도 있고, 침대, 책상에 책장, 옷장까지. 언능 배낭을 내려놓고 어제, 아니 그제부터 입고 있던 옷을 바로 벗어서 빨래를 했다. 빨래를 한다고 하는데, 할 때마다 옷이 누래지는 이유는 뭔지. -.- 빨래를 다 하고 샤워를 간단히 했다. 아침 늦게까지 자야쥐. 낼은 일어나면 누룽지랑 라면 끓어멱어야쥐.(동행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거. ^^;) 먹을거 생각하니까 배고프다. 빨리 자자.

오줌이 마려워 일어났더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잠이 깨기 전에 빨랑 화장실 가서 볼일 보고 언능 들어와 쓰려져 다시 잤다.
사람들 소리에 다시 일어나보니 12시 반. 목사님(그 아저씨, 목사님이셨다. 늦게 음악공부(지휘)를 하고 계신... 어쩐지 인상도 너무 좋으시고, 선하다했더니. ^^)과 동행 중인 사람이 벌써 일어나 방청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일어나 머리 감고, 방청소 대강 하고 점심을 해 먹었다. 동행하는 그 친구가 곧(23일 프랑크프루트 아웃) 나가는데, 아직 라면 두 개와 누룽지가 남아있다고 해서 그걸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랜 자취경험을 가지고 계신 목사님의 집도아래 물을 먼져 끓이고 누릉지를 집어넣었다. 조금 끓이다가 면과 스프를 넣고 보글보글.. ^^ 다 되었길래 목사님 방에 모였다.(대학 기숙사인데 방이 무려 세 개나 있다. 원래 목사님과 다른 분들이 오시려고 하다가 다 빵꾸를 내는 바람에 방 셋 있는 집을 혼자 쓰신다고.) 탁자에 라면을 올려놓고 먹는데, 으아... 이거 진짜 쥑였다. 집에서 가져온 고추장까지 풀어서 먹으니까 산해진미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아, 해외에서 먹는 우리나라 음식... ㅠ.ㅠ 정말 눈물이 날 정도였다. 국물 한 방울, 쌀 한 톨, 라면 한 줄기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고 설것이도 하고. ^^ 디저트로 요구르트를 먹었다.

뱀다리...
외국에 나오면 떠먹는 요구르트가 마시는 요구르트보다 훨신 싸다. 작년에 필리핀 갔을 때도 그랬고, 여기 유럽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모르겠고... 싸니까, 싼 빵(여기 독일서는 빵 열 개 한 봉지에 1마르크(약 600원 안 됨)짜리도 있다.)이랑 같이 사서 빵을 요구르트에 찍어먹어도 좋다. 돈이 좀 된다면 빵 갈라서 슬라이스 치즈 넣고 잼도 넣으면 좋고.

슬슬 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내일 일욜에도 상점이 문을 닫고 해서, 장을 보러 나가기로 했다. 목사님과 다 함께 나가서 조금 걸어가니까 PLUS(체인점인 슈퍼마켓이다. 다른 걸로는 뮌헨에서 갔었던 ALDI도 있다.)가 있었다. 우와... 슈퍼다. ^^ 부푼 가슴을 안고 들어갔는데, 목사님 왈, 차 타고 조금 더 가면 엄청 큰 월마트가 있다고 해서, 그러면 그 곳으로 가자고 했다. 걸어서는 갈 수 없고, 근방에 목사님이 예전에 가르치셨던 분들이 계시니 전화해 보자고 해서 전화를 했더니 같이 월마트 가시겠다고 하셔서 집에 들어와 기다렸다.

방 정리도 좀 하고, 여기 얼마나 머물지, 머물 동안 어딜 돌아다닐지 생각해 보았다. 도르트문트(Dortmund). 독일 서북쪽의 작은 도시였다.(오늘에서야 찾아보고 알았다. ^^; 쾰른에서 이체 타면 한 시간 반도 안 걸리는.) 그래서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랑도 매우 가깝다. 책도 보고, 기차시간표도 보면서 고민을 한 결과, 내일은 하이델베르크에 가서 성을 보고 오고, 모레는 쾰른과 본을 보고, 다음 날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그 다음 날은 벨기에의 브뤼셀... 그리고 스위스로 넘어가기로. 다 가까워서 당일치기로 갔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독일의 이체가 다 다니니까. 으흐흐... ^^

세 시 즈음 되어서 그 분들이 오셨다. 차를 타고 월마트에 가는데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4시까지만 한다는 것이었다. 으음. 빨랑 돌아야겠군. 월마트 주변에 커다란 상점이 많이 있었다. 엄청 큰 신발 전문 상점도 있고, 전자제품 전문 상점, 아이들 전문 상점까지... 그 상점들만 구경할래도 하루종일 걸릴 것 같았다. 월마트에 들어간 시각이 3시 30분. 빵, 잼, 치즈, 햄, 쥬스, 요구르트 정도 사기로 생각하고 카트를 끌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엄청 큰 월마트에서 다른 상점과 비교할 수 없는 가격을 보니 저절로 손이 가고 있었다. -.- 대강 먹을 걸 사고, 목사님께 대접하려고 10마르크가 조금 넘는 스테이크도 사고, 파스타와 스파게티도 샀다. 계산을 하니까 45. 79마르크. 대강 계산하면 3만원 가까이 산 것이다. 이제 마르크는 90마르크 정도 남았고... 많이 사긴 했으니까 나흘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번 뮌헨에서 약 8마르크 정도 사고서 이틀 먹고도 아직 쥬스 한 통이 남았으니까. ^^; 스테이크가 좀 크긴 했지만, 숙소 없는 우리들에게 선뜻 방을 주신 목사님께 대접도 해 드리고, 나도 그 동안 구경 못한 고기 구경도 하고. 일석이조다.

집에 다시 돌아왔다. 목사님은 그 분들(목사님이 젊었을 적에 가르쳤던 학생이 결혼도 하고 독일에 유학와 계신 것이었다.) 댁에 가셔서 볼 일 좀 보시겠다고 하셨다. 열쇠를 건내주셨고, 저녁은 그 분들 댁에서 해줄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셨다. 한 시간 정도 후에 데리러 오시겠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목사님을 못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으, 끔찍. 널찍한 독방에 주방, 샤워실, 화장실까지. 돈을 떠나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는 목사님이 너무 감사했다. ㅠ.ㅠ

여기 기숙사는 열쇠가 없으면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 기숙사 입구도 잠겨있고, 방에 들어갈 때도 당연히 열쇠가 있어야 하고. 우리 데리러 오셨나... 궁금해서 방 문을 그냥 열어놓고 밖으로 둘이 나왔는데, 커억~! 바람 때문에 문이 닫혀버린 것이다. 당근 열쇠는 안에 있고. ㅠ.ㅠ 이거, 목사님께서 열쇠 주실 때 열쇠 없으면 절대로 못 들어가니까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밖에 지나가던 학생에게 '우리 방에다가 열쇠 놓고 나왔다가 바람 때문에 문이 닫혀버렸다. 창문이 열려있으니 사다리 타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다리 어디 없냐?'하고 물으니까 아마 없을거라면서 전화카드로 열어보자고 했다. 아무리 전화카드를 쑤셔봐도 안 되고... 2층이라 쉽사리 창문으로 올라갈 수도 없고... 한 20분간 생쑈를 하다가 드디어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장소를 찾아서 겨우겨우 올라가 문을 열 수 있었다. 십년감수.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독일의 전화카드. 문 여는데는 유용하지 못했다.



조금 있으니까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차를 타고 5분 쯤 가니까 그 분 댁이 나왔다. 그 곳 역시 도르트문트 대학의 기숙사라고 했다. 집에 들어가니까 매운탕 냄새가... 흐흐 ^^ 잠시 앉아서 텔레비젼(테니스, 싱크로나이즈)도 보고, 인터넷도 하다가 저녁 식사를 했다.
주 메뉴는 무슨 생선인지는 모르는 생선의 매운탕. 새우도 많이 들어있었다. 목사님께서 직접 만드신 것인데, 얼~~큰한 것이 그 동안 먹은 빵의 서러움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따뜻한 밥에 김을 싸먹으니 어찌나 맛있던지.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던 콩자반도 너무너무 맛있어서 한 접시를 혼자 다 먹어버렸다. 한국 음식을 한국인 민박에서 아침 식사로 맛보기는 했었지만, 한국에서 공수되어온 배추김치와 부추김치... 으아, 쥑인다.
너무너무 맛있어서 정신없이 먹고보니 밥을 세 공기나 먹은게 아닌가. 먹고나니 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치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성대한 저녁식사가 끝나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대학 기숙사니까 바로 캠퍼스가 나왔다. 여기 정말 토끼가 많다. 그냥 대학 캠퍼스와 기숙사 마당에 토끼가 뛰어다닌다. 그 집 꼬맹이는 요즘 유행한다는 킥보드를 타고, 나머지는 모두 걸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학교가 조용~~했다.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캠퍼스 내를 산책하다가 그 곳 교회 목사님과 목사님의 아들을 만났다. 그 목사님은 휠체어를 타고 계셨는데, 아이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엉금엉금 타고 있었다. 그 아이 이름은 스태판. 스태판이 인라인스케이트를 너무너무사고 싶어해서 혼자서 몰래 약 120 마르크까지 모았다고 했다. 120 마르크면 약 7만원 쯤 되는데,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녀석이 참 기특하기도 하지... ^^ 그래서 목사님이 돈을 보태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주셨다고 했다. 아직은 서툴러서 엉금엉금 다니고 목사님 휠체어에 매달려다니고... 근데 누가 보면 스태판이 목사님 휠체어를 밀어주는 걸로 알 것이다. ^^

산책을 하고 들어와서 다시 인터넷을 시작했다. 기숙사라서 조금 돈을 들여 랜들 끌어오셨다고 했다. 컴퓨터도 새로 사신거라 빠르고.. ^^ 오래간만에 메일도 정리하고(58개의 메일 중 딱 하나 건지고 나머지는 광고나 스팸 멜. -.-), 홈페이지에 가서 글도 남기고, 핸드폰에 문자메세지도 보내고... ^^ 생각이 나서 신문 사이트에 가 봤더니 중부지방에 호우로 피해가 크다는 기사가 났었다.
목사님과 그 분은 아이스크림 내기 바둑을 두시고, 나는 그 집 꼬맹이(지원이)와 함께 놀았다. 유치원 다니는데 독일서 사는지라 독일말을 무지 잘 했다. 한국말도 잘 하는데, 발음이 약간... ^^; 어휘나 문장도 빈약하고. 하지만 그래도 bilingual이 아닌가. 영어야 또 학교에서 배울테니 세 가지 언어를 자유자제로. 부럽당. 암튼 지원이가 요즘 피아노 치는데 맛들였다고 해서 피아노 치면서 놀았다. 어린 녀석이 혼자서 많이 연습했는지 그래도 칠 줄 아는게 꽤 있었다. 누가 더 많이 치나 게임도 하고... ^^ 지원이 방에 매킨토시가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딱 보니까 올드맥인데, 이거 지원이꺼냐고 물으니까 아빠가 쓰다가 아빠는 새거 사고 전에 쓰던걸 지원이 줬다고 했다. 짜쉭, 어려서 부터 올드맥이지만 맥 가지고 놀고... 함 켜보자고 했더니 오락이랑 메일쓰기 밖에 안 된다면서 켜주었다.(그 때까지 전원버튼이 본체에 있는 줄 알았는데, 키보드 버튼 하나 누르니 켜지더군. -.-) 능숙한 솜씨로 게임 화면을 부르더니 벽돌깨기를 시작했다. 자기 이거 잘 한다면서 한참 했다. 나는 시켜주지도 않고.

지원이랑 한참 놀다보니 두 분의 아이스크림 내기 바둑이 끝났다. 목사님의 패배. ^^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나갔다. 차를 탔는데 지원이가 숨으려 하는게 아닌가. 알고 봤더니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차를 타면 꼭 아이용 안전좌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찰 오면 숨는다고... ^^ 시내는 아니고 외곽 중 중심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Cafe Venezia라는 곳이었는데, 이곳 독일에서도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이 유명해서 아이스크림 가게는 대부분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다고 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무신 공원에 잠시 갔다. 밤이라 깜깜했지만, 호수 주변으로 가로등이 있어서 가로등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근데, 음침한 곳에 있는 벤치에는 꼭 머리는 하나이고 몸은 둘인 괴물들이 있었다. --+

목사님 숙소로 돌아왔을 때가 벌써 11시 반이었다. 오늘 어떤 곳에 가 여행한 것 보다 훨씬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강 씻고 잤다. 내일부터 다시 여행 시작이니까.